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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철학, 그 양날의 검

by 정 호

글쓰기, 책 쓰기 열풍과 함께 글쓰기와 책 쓰기에 관한 책들이 서점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베스트셀러, 문학, 철학, 종교, 경제, 교육 등 전통적인 방식의 카테고리 설정은 여전히 서점가의 전통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서적 분류 방식으로 고수되고 있지만 가끔 유행에 따라 한쪽 귀퉁이에 전혀 새로운 카테고리가 등장할 때가 있다. 몸짱 열풍이 불 때 헬스 트레이너들의 책이 그러했고 티브이만 틀면 요리 프로그램이 범람하던 시절에 요리책이 그랬다. 요즘은 글쓰기와 책 쓰기가 그 유행의 흐름에 몸을 실었는지 서점에 가면 적지 않은 종류의 출판이나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책을 고르는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는 데 있어 이는 반가운 일임이 분명하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읽고 쓰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얼마큼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만큼 이미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그 가치를 어필하는 책이라면 사실 더 이상 새로울 것 없이 무용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했다.


다만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해 "거룩하다"는 단어를 제목으로 붙일 정도의 책이라면 이는 단순히 효용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의 이력이 심상치가 않다. 철학을 바탕으로 인문학 공동체를 운영 중이라는 저자의 이력이 책 전체에 묻어 있는 느낌이다. 제목만 보아도 읽고 쓰는 행위를 예찬하는 책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이 책은 일상적인 이야기나 글을 쓰고 난 이후 개인적으로 느끼게 된 감상을 근거로 읽고 씀의 유익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철학적 생각과 근원적 질문을 바탕으로 읽고 쓰는 행위가 갖는 본질적인 가치와 제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가 왜 반드시 읽고 쓰는 행위에 몸담아야 하는지 힘을 주어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말은 생각이 난해하고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철학이라는 학문을 바탕으로 글쓰기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뜻이다. 철학자들의 생각에 기초하여 저자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관통하는 기조를 세워 그것들의 가장 중심에 읽기와 쓰기가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것이 이 책이 갖는 다른 글쓰기 예찬 서적들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느껴지는 거부감 또한 존재한다. 저자는 철학을 공부하는 인문학 공동체의 운영자이다. 철학을 오랜 세월 깊이 있게 공부했음이 당연할 터다. 책의 전반에 철학의 냄새가 강하게 묻어난다. 생각을 전개하는 방식이나 예시로 드는 책과 그 책의 문장들,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단어 등을 통해 저자의 글쓰기는 철학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격투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UFC를 그저 치고받고 두들겨 패는 개싸움 정도로 알기도 한다. 하지만 UFC 선수가 되는 길은 동네에서 싸움 좀 했다고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정 영역에서 정점을 찍을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은 투기종목 "선수"들이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오르는 최종 목적지가 바로 UFC다. 하여 그곳에는 복싱선수, 유도선수, 레슬링 선수, 스모선수, 무에타이 선수, 태권도 선수 등 특정 영역의 정점 혹은 그 부근 즈음에 도달한 선수들이 모여든다. 자신의 기본 베이스를 바탕으로 여러 무술을 보강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창조해낸 선수들 간의 겨룸이 이루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UFC인 것이다.


글쓰기도 이와 비슷하다. 소설가의 글과 시인의 글, 변호사, 의사, 교사, 음악가, 청소부, 장의사, 농부의 글은 모두 다르다. 모두 같은 글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가만히 읽다 보면 그 글을 쓴 사람의 본업이 분명히 묻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베이스가 되는 것, 여기서는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직업에 한정 지어 예를 들었을 뿐이지만 사람마다 베이스가 되는 여러 바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은 분명 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고유한 글의 색을 만들어낸다.


명확한 지점이 있다는 것은 그 명확함의 강도에 비례해 장단점을 갖는다. 철학을 베이스로 한 글쓰기 책은 글쓰기의 의의를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일반 대중에게 다소 현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철학을 오래 공부한 사람들이 쓴 책의 공통점은 철학책이 아님에도 철학용어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하기야 이는 어떤 학문이건 마찬가지일 테다. 전공을 배우며 입과 손에 익어버린 언어들을 어찌 쉽게 지워낼 수 있을까. 모든 학문은 그 학문 고유의 언어가 있는 법이다. 그 분야를 설명하기 위해 그 분야 고유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다만 종교 서적에 과학 용어가 어색하고 철학 서적에 경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색해 보인다. 글쓰기 기술이나 글쓰기의 현실적인 효용성에 대해 기대하고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철학은 정말 소수의 학문이 맞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의 인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하고 그 어느 학문보다 효율적인 학문일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어느 학문보다 비효율적이며 전혀 쓸모없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책이 아닌데 본 책의 주제를 철학과 엮어 풀어나가는 서적들은 깊이 있는 책이 되거나 식자들의 허세로 범벅된 현학적인 책이라는 확실한 호불호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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