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결과물이 아닌 삶의 과정

하나의 책을 펴내는 행위는 다음 책을 펴내도록 또다시 이끈다

by 정 호

글을 쓰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쓰는 사람에 따라 달리 정의될 수 있다. 글을 쓰는 이유와 동기는 제각각일 것이며 그것이 갖는 의미 역시 무수할 테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언젠가 반드시 딸려 올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책을 낸다는 것을 글쓰기의 결과물이자 종착점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내는 행위는 글쓰기의 최종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 건너가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경유지에 가깝다. 생각을 엮어 글을 쓰고 글을 엮어 책을 내는 행위는 하나의 생각을 종결시키고 결과물을 만들어 매듭짓는다는 차원에서 마침표를 찍는 행위에 비견되곤 한다. 허나 글 쓰는 사람의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책 한 권 내는 일은 결코 마침표가 될 수 없다. 평생 도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있어도 도박을 딱 한 번만 하는 사람은 몹시 드문 것처럼 중독은 인간에게 끊어내기 어려운 강력한 족쇄를 채운다. 글쓰기 역시 강력한 중독성이 있는 행위이기에 책을 한 권 내는 것으로 쓰는 행위를 종결시키는 사람은 드물다. 쓰면 쓸수록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은 더욱 많아지고 스스로가 정돈되고 삶이 또렷해지는 그 느낌이 좋아 결코 글쓰기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방망이 깎는 노인은 결코 방망이를 완성시키지 못한다. 끝없이 깎아내고 다듬으며 쉬지 않고 방망이를 매만지는 노인의 손끝에 방망이는 조금씩 그 형태를 달리해갈 뿐이다. 개별적인 몇 개의 방망이들은 완성될지라도 노인은 방망이 깎는 행위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고의 방망이를 만들어낼 때까지 방망이 만드는 손놀림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골몰하여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사람에게 어찌 완성과 만족이 있을 수 있으랴. 쓰면 쓸수록 몰랐던 세계와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감각은 깨어나고 좁았던 시야가 조금씩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다음에는 더 좋은 글을,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으리라는 막연하지만 잡힐 것도 같은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니 어찌 하고 싶은 말이 없을 것이며 어찌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으랴.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소통이자 유언이자 다짐이다. 그렇게 나를 드러내고, 가까운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남기고, 뱉어놓은 것을 통해 남아있는 나의 삶을 다시금 새롭게 덧칠하게 만드는 글쓰기와 책 쓰기는 그래서 끝없는 삶의 과정에 스쳐 지나는 한 점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점을 찍고 그 점을 발판 삼아 새로운 점을 찍는다. 듬성듬성 놓여 있을 몇 개의 점을 밟으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어떤 것들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기도 걱정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