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처음엔 기술로, 결국엔 삶으로

by 정 호

글쓰기 강사들은 글 쓰는 스킬에 대 이야기한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본질적인 것은 이해하기도, 도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며 기술적인 것이 좀 더 가시적이고 즉각적인 효용을 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글쓰기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재미를 느끼게 만들어야 하고 그 재미라는 것은 자신이 일정량의 글을 써내게 되었을 때 느껴지게 마련인데 그것을 가장 빠르고 쉽게 도울 수 있는 것이 어떤 기술적인 요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글을 시작할 때는 임팩트를 주고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주제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먼저 이야기하면 좋다거나, 양을 늘리기 위해 부사와 형용사를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적절한 속담이나 유명인들의 명언을 섞어주면 좋다는 등, 문장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복문보다는 단문으로 짧게 짧게 끊어서 쓰는 것이 더 힘 있는 문장이라는 이야기들은 글쓰기 책을 한 두 권만 읽으면 금세 익숙해질 수 있는 초보적인 기술들이다. 사실 시중에 나와있는 글쓰기 비법을 가르쳐 준다는 책을 조금 살펴보면 글쓰기를 시작함에 있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주제를 떠올리기 힘들 때 사용하면 좋은 방법이라든지 소재를 어떻게 연결 지으면 좋을지 생각해 내는 기술 같은 것들,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를 참고하며 기술을 갈고닦는 행위 자체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고등수학을 익히기 위해서는 덧셈뺄셈부터 착실히 배워야 하고, 미슐랭 셰프가 되기 전에 야채 손질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궁극기는 이런 것이 아니다. 기술적인 것은 초급자 수준이라면 배우고 익혀야 마땅한 것이지만 어느 정도 글 쓰는 것이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기술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삶이다. 잘 쓴 글이란 무엇인가? 독자에 따라, 혹은 읽는 목적에 따라 다르겠으나 통상적으로 우리가 어떤 글을 읽을 때 잘 썼다고 느껴지는 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잘 읽힌다.

둘째. 영감을 받거나 공감이 된다.

셋째. 그 결과로 충분한 몰입감을 느낀다.


잘 읽히고, 공감과 영감을 주고, 몰입감을 선사하는 글을 쓰려면 대체 어찌해야 할까. 기술적인 것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90퍼센트 정도의 공감과 몰입을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유려한 문체, 현실과 맞닿아 있는 시의적절한 주제 의식, 색다른 시선, 창의적인 믹싱, 전통과 고전에 대한 재해석, 시선을 잡아끄는 시작과 마무리 문장, 변치 않을 것 같은 진리에 관한 고찰 같은 것들. 하지만 독자들이 최후의 영혼까지 홀린 듯 작품에 매료되며 100퍼센트의 몰입과 공감을 경험토록 만드는 것은 작가의 삶과 그가 쓴 작품의 연결성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은 며칠 째 들썩이고 있다. 포털 뉴스가 도배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각종 SNS에는 한강의 옛 인터뷰 영상과 각종 짤들이 게시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그녀의 목소리 톤, 표정, 말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회자되기 시작한다. 그녀의 책은 하루 만에 품절이 되었으며 그녀의 영광 덕분에 인쇄소에서는 밤샘작업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미소를 띤 직원들의 모습이 방송에 송출되기도 한다. 주식시장에서는 예스 24가 이틀연속 상한가를 달리고 한강의 중고 서적 리셀가가 올라가는 등의 현상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인 가운데 그녀의 신드롬 어디까지 이어질지 그 기대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던 와중 어느 댓글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한강 작가를 향한 이런 무시무시한 관심이 제발 폭력으로 변하지 않도록 그녀의 과거에 부디 결점이 없었으면 좋겠다"


노벨문학상이라는 그녀의 엄청난 성과 불러오고 있는 파장의 폭풍 속에서 어떤 이들은 작품과 작가의 연결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 삶 또한 그녀의 작품이 이뤄낸 결과물에 버금가는 위대한 삶이기를, 위대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작품의 명성에 누가 되는 결점이 발견되지 않기를. 그것은 그동안 목도해 온 표리부동한 예술가들에게 실망해 온 대중이 당연스레 걱정할 수 있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작품의 감독이나 배우의 사생활 문제로 대중은 얼마나 많이 실망했던가.


다자이 오사무가 만수무강했다면 인간실격은 고전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고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이 뿜어내는 생명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니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의 철학은 사상의 정수를 향해 달려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노래 가사대로 살게 된다는 가수들의 말은 앞뒤가 바뀐 말이다. 가사대로 산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런 가사가 나온 것이다. 즉 삶으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기에 관성의 법칙에 따라 살던 대로 살다가 갔을 따름이다. 러니 가사를 탓할 필요가 없다. 이러나저러나 언젠가 반드시 그런 가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 테다. 품을 위해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은 어떤 작품을 마주할 때 그 작품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반드시 작품 뒤에 창작자를 그려보려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창작자와 창작물의 연관성을 발견해 낼 때 인간은 작품과 작가에게 완전히 매료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선 일단 어떤 방향이 되었건 몰입해서 살아야 한다. 미친 듯 우울해하거나 미친 듯 열정적으로 살거나, 미친 듯 무언가를 애정하거나 미친 듯 무언가를 미워하거나, 그렇게 무언가에 미친 듯 몰입해서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만의 글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신의 삶과 글이 연결될 때 독자들은 기교를 넘어서는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그런 글은 이미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