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서 꼭 원인을 찾을 필요는 없어
아빠: 아들 오늘 어린이집 재미있었어?
아들: 아니 재미없었어
아빠: 왜?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아들: 아니 그냥 재미없었어.
과학적 세계관이 현시대의 강력한 패러다임 중 하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까. 우리는 늘 모든 것들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모든 원인의 끝에는 어떠한 결과가 따라온다는 생각. 정말 그런가?
너는 내가 왜 좋아?
사랑에 빠져봤다면 한 번쯤은 반드시 들어봤거나 혹은 던져보고 싶은 질문, 당신은 나를 왜 좋아하느냐는 연인의 물음에 우리는 두 가지 형태의 답변을 준비할 수 있다.
첫 번째 답변은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이다. 눈이 예뻐서, 마음이 넓어서, 부자라서, 자상해서, 유쾌해서, 잘 통해서, 심지어 장범준은 자신의 노래 "이상형"의 가사에서 새끼발톱이 설레게 하고 오장육부가 가슴을 뛰게 하며 달팽이관이 섹시하다고까지 말한다. 이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은 연인이 사랑스러운 이유를 오천 육백 가지 정도는 댈 수 있을 만큼의 창의성과 관찰력을 발휘해 낼 수 있다. 이는 인과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결과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정말 저런 이유들로(인과론) 사랑에 빠졌을 수도 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결과론) 저런 이유들을 찾아낼 수 있기도 하다는 의미다. 인과론이든 결과론이든 어찌 되었건 반드시 이유를 찾아내서 제공하고야 마는 이러한 방식의 답변은 누군가에게는 로맨틱함의 극치로 다가올 수도 있을 테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사기꾼의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두 번째 답변은 우리 사이에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그저 느낌 가는 대로 feel 충만 한대로, 그냥 너라서 좋다는 식의 대답이다. 이는 앞서 첫 번째 방식의 답변을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성의하며 불성실함의 표본으로 여겨질 만한 대답일 테지만 혓바닥이 긴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와 같은 느낌을 주고받는, 소울 메이트로 일컬어지는 영혼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정석적인 답변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과학만능주의로부터 비롯된 인과론적 패러다임에 우리의 사고방식이 종속되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늘 원인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나에게만 그런 일이 닥치는 것 같은지, 왜 나는 그런 식으로 밖에 살아가지 못하는지, 왜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지, 왜 나는, 왜 너는, 왜 세상은, 도대체 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인지 그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느라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휘발시켜버리곤 한다.
왜냐는 질문은 중요하다.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온 동력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왜냐는 질문은 본능적이다. 미지의 것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하고도 본능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며 왜냐는 질문을 회피하기 어렵다.
현실을 따르는 삶과 이상을 추구하는 삶, 두 가지 차원의 삶 모두에서 왜냐는 질문은 근본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모두 왜라는 질문을 해결해 나감으로써 소거시킬 수 있는 삶의 덫이기 때문이며 이상을 추구하는 삶 역시 왜냐는 질문에 스스로 끊임없이 답을 해 나가는 과정 안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수정,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언제나 왜냐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답을 찾을 수 없을 때가 더 많은 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아무리 궁리하고 고민해봐야 답이 안 나오는 일 투성이인 것이 삶이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처럼 오랜 시간의 고민이 꼭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하여 때로는 구구절절하게 원인을 설명하거나 찾으려 하지 않는 태도를 의도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냥 좋은 것이 있으면 그냥 싫은 것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폭넓은 인식과 아량을 갖춘 사람이 되기를,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시간 속에 세월을 낭비하지 말기를, 모든 일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알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혹여 알 수 있다고 하여도 바꿀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순한 것이 삶의 진리에 가깝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그냥이라는 말속에 많은 뜻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런 사람은 꽤 멋진 사람이 분명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