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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12. 2020

합이 맞는 순간, 우리는 짜릿했다

그 순간 만큼은 소울메이트

대학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1년에 총 4번의 공연을 했다. 2월 말 즈음 겨울의 추위와 대학이라는 새로운 공간의 낯섦 탓에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신입생들을 앉혀 놓고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세요~하며 동아리를 홍보하는 첫 번째 공연, 5월엔 푸르른 여름을 앞두고 폭발하는 청춘의 열정을 닮은 대학 축제 공연을, 9월엔 공연 동아리들과 전시 동아리들이 주축이 되는 문화제 형식의 공연을, 11월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오직 우리 동아리만을 위한 콘서트 형식의 정기공연을.


 각 공연마다 보통  달의 준비기간이 있었다.

방학 중에 준비를 해야 하는 공연이 2번 있었고 나머지 두 번은 한참 놀고 싶고 날씨 좋은 계절에 준비해야 했다. 이런 탓에 웬만한 열정과 자기희생 없이 오롯이 4번의 공연을 다 치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의 공연을 끝으로 힘들어서 탈퇴하는 회원이 많았으며 각 기수의 1학년 때 신입 회원의 숫자와 4학년 때 남아있는 회원의 숫자는 보통 절반 이하, 심한 경우는 1/10까지 줄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1년  번의 공연을 다 치러냈다는 것에 대해 서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저놈은 참 대단하다, 혹은 독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것은 때때로 존경이나 동경, 혹은 인정의 형태로 당사자들에게 자부심을 주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1년 번의 공연을 완수했을 뿐 아니라 임고생이 되는 4학년을 제외한, 3년 열두 번의 공연을 완수해내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다. 아주 간혹 가다 4학년 때도 공연에 참여해서 미친놈 소릴 듣는 사람도 매년 한 명씩은 있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춤에 미쳐있는 사람들이었다. 얼마간의 기본적인 시간의 투입이 반드시 필요하고 단체로 시간을 춰서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분명 개인적으로 포기했던 것들이 있었다.


 연인과 데이트를 못해서 차였다고 울먹이는 친구도 있었고, 잘하고 있던 과외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금전적인 손해를 봐야 했던 친구도 있었다. 10명에 가까운 팀원의 전체 연습을 맞춰보기 위해 가족들과 약속을 포기하고 달려왔던 친구도 있었다. 개인적인 약속들을 아마도 많이 포기했으리라 생각한다. 가끔가다 학교 앞에서 술을 먹다 걸려서 취한 상태로 끌려와 연습을 하는 시트콤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고되었지만 공통으로 좋아했던 것을 바라보며 땀 흘리는 시간을 함께 보낸 기억을 나눠가진 개인들에게는 "우리"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그렇게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물론 그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에 몸담고 있던 기간 동안 다양한 인간관계의 변주를 경험하기도 했다. 주야장천 혼자서만 연습하는 친구. 주인공 역할만 고집하는 친구, 연습에 불성실한 구, 모두 합을 맞춰야  빠져서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친구, 공연을 며칠 안 남겨두고 탈퇴를 하는 무책임한 친구, 동아리원들과 교류는 하지 않고 오직 무대에 서는 것만이 목표인 친구. 매번 공연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팀을 나눌 때 자연스럽게 앞에서 말한 미친놈들과 한 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미친놈들끼리 한 팀을 구성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랬다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공연이 두 세곡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불협화음을 겪는 와중에도 완벽히 하나가 되는 순간이 존재한다.  순간을 말하기에 앞서 연습 과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연습의 과정을 살펴보면 대충 다음과 같다.


1. 팀을 나누고 파트를 나눈다. 이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권모술수가 난무하기도 한다.

2. 각자 맡은 배역의 안무를 알아서 익혀온다.

3. 이어폰을 꽂고 혼자서 음악에 맞춰 동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한다.

4. 팀원이 모여 음악을 틀고 서로의 동작을 교정하고 각과 대형을 맞춘다.

5. 공연 일주일 전 4학년 선배들 앞에서 중간 점검을 받고 잘한 점은 칭찬해주고 수정할 점을 지적해준다.

6. 공연 직전까지 안 되는 부분을 무한 반복 연습한다.


 돌이켜보면 동아리 활동을 하며 가장 짜릿하고 강렬했던 순간은 공연 당일 무대 가 아니었다. 수많은 시간 동안 혼자서, 그리고 함께 연습을 하다가 최종적으로 합을 맞추던 그 시간.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은 미세한 부분을 수정하고 수정하다가 마주하게 되는 그 장면, 모두가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오차 없이 완수해냈고 그 사실을 마주 보이는 거울을 통해 서로가 확인해냈던 그 순간. 한치의 오차와 일말의 실수도 보이지 않고 모두가 함께 완벽했다고 느낀 그 기적 같은 순간. 모든 과정이 끝나고 마지막 단계에 가서 정확하게 합이 맞아떨어지며 음악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서로가 서로의 만족감을 읽어주고 우리 모두가 완벽했다는 기쁨을 동시에 느끼게 될 때의 그 전율.


 바로  순간이 가장 강렬하게 짜릿했던 순간이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바라보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도 황홀한 순간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으랴.

이런 날이면 맥주를 한잔하러 가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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