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왜 거기서 나와
누군가가 꿈에 나타난다는 것
돌아가신 부모님이 꿈에 나타나 여섯 자리의 숫자를 불러준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소중한 숫자이니 현관 비밀번호로 설정하여 두고두고 기억하기보다는 출근길에 당장 로또를 사는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익숙한 전개일 것이다.
꿈에 누군가가 나온다는 것은 대부분 반가운 일이다. 그것이 잘 알고 지냈던 사람이건 그다지 인연이 깊지 않았던 사람이건 상관없다. 촘촘하지 못한 무의식의 그물 속에서 숭덩숭덩 쏟아져 흘러내리지 않고 어딘가에 기어코 붙어있다가 내 꿈속에 나타난 그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말에 의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나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거나 나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타인이 꿈에 나타났다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그 사람이 흡착되었다는 뜻일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그와 나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없을 때에는 다소 당혹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당혹스럽긴 하지만 꿈에 나타나는 사람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하게 된다는 어느 심리 효과처럼 일단 누군가가 꿈에 등장하게 되면 특별히 싫어했던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사람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윤희에게라는 영화에는 "나는 아직도 네 꿈을 꿔"라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에서는 나의 마음속에 네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로 꿈을 활용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 그 사람의 방이 존재하고 있어 꿈에 나타나는 것인지, 꿈에 나타났기 때문에 나의 의식 한 공간을 내어줄 준비를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우선순위가 헷갈릴 때가 많다.
세상엔 참 알 수 없는 일이 많다. 오래도록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 소원해진 지인들의 꿈을 가끔씩 꾸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단은 반갑다. 반갑고 기쁜 마음을 가슴에 품고 꿈에서 깨어 어젯밤 나의 꿈에 다녀간 옛 친구에게 오랜만에 안부전화를 걸 때가 있다. 이미 결혼도 한놈이 갑작스럽게 전화를 걸 일이 없을 텐데...라는 생각 때문일까,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약간의 경계심이 섞인 당황한 눈치이지만 아무 이유 없이 네가 꿈에 나와 전화를 걸어봤다는 말에 이내 그 사람 역시 마음을 열고 우리는 과거의 어딘가로 잠시 시곗바늘을 되돌린다.
꿈에 누군가가 나타나는 이유는 아마도 빛바랜 관계에 기름칠을 해보라는 게시일까? 예지몽, 길몽, 흉몽, 꿈을 두고 이래저래 공식과 의미를 붙여 해석하길 좋아하는 우리의 삶이지만 정해진 답이 없는 것 또한 우리의 삶이다. 세상만사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 오늘도 혼자만의 답을 찾아 이래저래 생각하고 의미 없는 의미를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