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 체감되는 바로 그 순간
가끔 산책을 한다. 동네 골목 어귀도 좋고,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는 천변도 좋고,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아파트 단지 안을 잠시 거니는 것도 좋아한다.
최근 이사 온 집 근처에는 운이 좋게도 적당한 규모의 공원이 있어 시간이 허락할 때면 초록의 풀내음과 산뜻한 하늘을 마주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가끔 공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공원과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방사형 아파트 단지들은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군부대가 위치하던 지역이었다. 군부대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하면서 빈터를 신규 택지지구로 지정하여 개발을 한 덕에 지금은 군부대였던 과거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다.
잘 가꿔진 공원과 공원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 단지들을 가만히 둘러보다가 문득, 이곳이 10년 전만 해도 군부대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불현듯 떠올라 그 둘 사이의 괴리감이 꽤나 커다랗게 느껴졌다.
군대란 어떤 곳인가.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자신이 전역한 부대가 있는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만 보아도 남자들에게 군대는 결코 반갑거나 다시 찾아보고 싶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남자들뿐 아니라 그들을 가족으로 둔 여성들, 그러니까 어쩌면 거의 전 국민이 기피와 혐오의 대상으로 삼을만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군대라는 공간이 지역의 핫한 공원으로 바뀌어 이제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에 어느 한 장소가 품고 있는 용도와 상징 같은 것들이 변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순식간에 변화하는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와 동시에 우리 주변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채 자신의 자태를 위풍당당하게 지탱하고 우뚝 서있는 모든 것들이 언제든 과거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곧 어떤 기준이나 뿌리 같은 것들조차 생각만큼 단단하거나 든든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하게 만들어버렸다.
공간의 변화를 우리는 갑작스레, 혹은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재개발되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고향땅의 어느 부분들, 도로가 나버린 부모나 조부모의 묫자리, 기후변화로 사막이 되어버린 호숫가, 전쟁으로 인해 어제까지 평온했던 마을이 폐허가 되어버린 상황.
어디 공간만 그러한가, 갑작스레 뒤바뀌는 것은 물질의 세계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패러다임의 변화는 특별한 일이라기보다 오히려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에 가깝다. 어제까지 폭식과 과식이 유행이었던 TV 프로그램은 갑작스레 소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행처럼 부각하고, 어제까지 소녀팬들을 몰고 다녔던 아이돌은 오늘 아침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과거가 들통나 하루아침에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불멸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들은 거대하게 느껴진다. 도시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현대적인 건축물들, 오랜 세월 한 자리에 우뚝 서 있는 고대의 유적지, 천년만년 무한할 것만 같은 광대한 자연환경, 유명 스타들의 무소불위의 인기, 시대를 풍미한 철학과 사상, 반박의 여지가 없을 것만 같은 최첨단의 과학이론, 왜 그래야 하는지 묻는 것이 이상할 만큼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몇몇의 도덕률처럼 변하지 않고 영원할 것만 같던 어떤 것들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거대한 것들 조차 이처럼 하루아침에, 너무도 손쉽게 무너지고 흐트러지고 마는데 그에 비해 한 개인의 인생은 정말 찰나와 같은 것, 그리고 약하디 약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짧디 짧은 인생, 언제든지 무너져버릴 수 있는 인생,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크게 휘청거릴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것들을 그토록 변치 않을 것이라 믿으며 위험하고 위태로운 믿음을 삶의 뿌리로 삼고 있는 것일까. 뿌리가 썩은 나무는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 제대로 된 양분을 흡수하기도 어렵다.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만이 짧디 짧은 인생을 살아가며 조금이라도 덜 휘청거리도록 도와줄 버팀목이 되어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