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 뭐야?
지금껏 살아오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혹은 잘했다고 생각되는 선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우리는 가끔 자신과 타인에게 던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지금의 배우자를 만난 것', '자녀를 낳은 것'과 같은 보편적이면서 정답인 것 같은 답을 내어 놓는다. 이는 가식적인 대답이 아닐 테다. 정말로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수많은 좋은 일들을 경험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충분히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의 보편타당한 답안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아내로부터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정확히 저렇게 두 개의 모범답안을 내놓았지만 그렇게 답한 뒤 스스로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분명 그간 살아오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선택지들 사이를 횡단하며 걸어왔을 터인데, 저 두 모범답안에 버금갈만한 훌륭했던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하는 궁금증.
중학교 3학년 때 공부를 시작한 일
속 시끄러웠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살뜰한 케어를 기대할 수 없었다. 살뜰한 케어는 고사하고 불효 막심하게도 차라리 고아원에서 자라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눈을 뜬 채 집에 머물고 있는 순간들이 괴로웠다. 그 괴로움은 자연스레 들숨과 날숨에 냉소와 허무를 스며들게 했다. 가정의 관심과 케어가 부족한 아이들, 속이 시끄러운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신과 비슷한 환경을 가진 아이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슬픔을 위로받고 그 어둠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그 장소는 대부분 양지보다 음지인 경우가 많다.
허무는 회피를 낳고 분노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폭력을 발생시킨다. 변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가정환경은 그렇게 체념과 허무를 쌓아 올렸고 그것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낳아 대부분의 것으로부터 회피하려는 습성을 조금씩 각인시켰다. 대화를 피하고 노력을 무시하고 갈등을 회피하고 기쁨을 외면했다. 그러는 사이 분노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렇게 위태롭게 살다가 중학교 3학년, 학교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한 선생님을 담임교사로 만나게 되었다.
그의 눈에 나의 안타까움이 보였던 것인지, 혹은 어떤 가능성을 알아챈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물질적 인센티브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선생님은 나에게 공부를 하라며 매일 엄하게 몸과 마음을 꾸짖었다. 20년 전이니 당시만 해도 체벌이 존재했던 시기였다. 선생님은 약속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아침마다 몽둥이찜질을 선물했다. 정말로 "선물"이라는 표현을 했었다.
그와의 약속은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 전화로 본인의 핸드폰에 전화를 할 것'이었다. 아침에 우리 집 전화번호가 그의 휴대폰에 찍혀있지 않으면 그날은 선물을 받는 날이었던 셈이다. 처음에는 사실 맞기 싫은 마음에 공부를 했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렴풋했다. 공부를 해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야겠다는 절박함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공부를 못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족스럽지도, 잘하고 싶다는 의욕도 전혀 없었다. 정말 엉덩이의 "생존" 그 자체를 위해서 공부를 했던 셈이었다.
그렇게 3, 4, 5월이 가고 시간은 흘러 서늘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워낙에 바닥이었던 터라 공부를 하니 성적이 오르는 게 눈에 보였다. 연합고사라는 이름의 시험을 앞두고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감사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결코 체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연히 맞아떨어진 상황과 사람과 선택과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어떤 선택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시작점으로 추측되는 것이 바로 중학교 3학년 때 공부를 하기로 한 선택이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에게 맞아가며 공부를 했던 학생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서너 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들 중 누군가는 하는 척만 했고 누군가는 반항했다. 나 역시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대충 놀다가 시간에 맞춰 전화만 하거나 끝까지 되지도 않는 고집을 부려 왜 우리만 괴롭히냐며 반항하고 대드는 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정말로 그 시간까지 공부를 하기로 선택했다. 태어나서 처음 나의 선택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선택의 선택을 거슬러 올라가며 중학교 3학년 때 공부를 시작했던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것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꼽고 싶은 이유는, 바로 그곳이 지금 누리는 모든 기쁨과 앞으로 일어날 모든 기대의 시작이었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지금껏 살아온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버리는 일. 그때의 나에게 고맙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20년이나 흐른 옛 일이라 까마득한 것 같으면서도 어제 있었던 일처럼 여전히 생생한 것이 신비롭다. 강력한 기억에는 그만큼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다. 새로이 다가올 20년 뒤의 나는, 지금 나의 어떤 선택들로 인해 울고 있을지 웃고 있을지 생각해본다. 20년 전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고마워하듯, 20년 뒤의 나 역시 지금의 나에게 고마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