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나 사이의 거리

일치시킬 것인가 분리시킬 것인가

by 정 호
저 사람은 딱 선생님 같아.
저 사람은 군인 그 자체야.


이런 말은 어떤 생각에서 비롯되는가. 교사나 군인에게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특성이 있고 특정 직업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이미지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교사하면 입바른 말을 한다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고 차분하고 정돈된 말투나 어휘를 구사할 것 같다는 어떤 이미지, 군인 하면 딱딱하고 대쪽 같은 성격에 강단 있고 남성성이 두드러지는 이미지 같은 것들.


이를 두고 편견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 어떤 직업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통되게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가 내가 생각하는 바와 다를지라도 내가 막상 그 일을 하게 되면 그 보편적인 이미지와 나의 개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순간이 온다.


예를 들면 스스로를 전혀 일반적인 교사상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교사의 일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보편적인 교사의 이미지와 일치되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다 보면 직업인으로서의 나와 자연인으로서의 나 사이에서 역할 갈등이 벌어진다. 어떤 내가 진짜 나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떤 선택을 이미 끝마쳐 놓았을 확률이 높다.


역할 갈등을 겪다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을 다음 셋 중 하나로 점차 고정시켜 나간다.


1. 업과 나는 하나다. 짐이 곧 국가요 국가가 곧 짐이다.

2. 업과 나는 별개다. 직업인으로서의 나와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다. 지킬 앤 하이드

3. 일과 자신의 경계 언저리에 머물며 지나친 일치도 지나친 분리도 경계하는 사람, 상황에 맞게 변화에 능한 사람


1번과 같이 일과 자신의 개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정신세계를 구축하게 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일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마저 자신의 업의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좋게 바라보면 견고함이요 전문성이지만 나쁘게 바라보면 편협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랜 세월 자본가로 살아온 한 사람이 자신의 본성마저 자본가라는 명함 안에 끼워 넣게 되는 순간 그는 존경받고 아우라가 있는 기업인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직장생활을 하는 월급쟁이들이나 노동자를 하찮게 여기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요즘 사업이나 창업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말하는 유튜버들이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세상에는 다양한 자리가 있고 각자 자신에게 맞는 자리들이 있다. 그리고 사회는 그런 부분들이 모여 조직되고 운영되며 작동한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서로에게 빚을 진 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택만이 유일한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오만하고 그래서 위험하다.


반대로 2번처럼 자신의 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신 상태를 유지하며 꾸역꾸역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를 경멸하는 증권맨이라거나 인간은 태생적으로 다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진 교육자처럼 자신의 가치관과 하는 일이 품어야 할 직업관이 정 반대의 결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일이지만 자신의 정신세계와 끊임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살기 위해 세 번째 선택을 하게 된다.


3번은 타협점이다. 2번처럼 일과 나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다가 일은 일이고 나는 나다 라는 식의 생각으로 일적인 나와 개인적인 나를 분리시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롭기란 얼마나 힘든가. 내 생각이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일을 선택해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큰 행운을 타고난 것인가, 우리는 늘 그런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세상에 그런 사람 몇 없어 그냥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야" 일은 일이로되 나는 나로소이다. 이는 일견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다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유체이탈식 사고를 장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어떤 약점을 생성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적당히"라는 저주다.


일의 정신과 나의 정신이 일치하는 사람보다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아마 훨씬 많을 테다. 퇴사를 주제로 하는 책과 글이 넘쳐나는 것이 바로 그 반증이다. 그래서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생활인들은 필연적으로 두 갈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앞서 말한 1번처럼 일과 나의 정신을 완전히 일치시켜 일이 곧 나요 내가 바로 그 일인 사람이 되거나, 3번처럼 일은 일이고 나는 나로 남겨두는 완벽한 경계를 긋고 그 경계를 사이를 안전하게 오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 더 바람직한 삶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전자가 보다 안전하고 일관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마음의 안정과 평화로운 삶으로 이어지리라 믿어진다. 덕업 일치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고 말하는 성공한 덕후들의 미소를 보라. 그것은 꾸며내거나 가식을 칠한 거짓 웃음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직업적 정신세계와 개인적 정신세계의 일치는 커다란 기쁨과 충만함을 안겨줄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래서 정답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꾸역꾸역 해나가다 보면 결국 언젠가 멘붕이 오게 된다. 어렵게 3번의 선택을 통해 숨통을 좀 틔운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첩경에 불과하다. 그래서 만약 혹시라도 직업정신과 나의 정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을 살펴봐야 한다. 그렇게 기웃대다 보면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일, 나와 좀 더 잘 맞는 일을 반드시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바로 기쁜 마음으로 업과 내가 하나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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