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어느 주말 아침 현관을 나서다 택배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이 없어서 집안에 있는 아내에게 집으로 택배 올 것이 있는지 물었다. 없다는 아내의 대답과 달리 택배 봉투 위 수령자 란에는 아내의 이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응? 뭐지? 주문한 것이 없다는데 이 작은 봉투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대체 무엇인가 호기심이 생겨 비닐봉지를 요리조리 살펴봤다.
부추씨
부추씨? 부추씨를 살 일이 없는데. 아내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혹시 부추씨 결제했어? 부추씨가 택배로 왔는데"
"아니? 내가 부추씨를 왜..? 가만 혹시..."
잠시 동안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페이 결제내역을 살피던 아내는 정말 부추씨 결제가 돼있는 것을 확인하고 피식 웃는다.
"며칠 전에 아들이 휴대폰 가지고 놀 때 부추씨 광고를 클릭했나 봐. 같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그런 광고를 본 것 같기도 해. 그런데 그걸 결제까지 할 수 있는 줄은 몰랐네. 할아버지랑 같이 장난감을 인터넷으로 몇 번 구입해보더니 인터넷으로 결제하는 경로가 눈에 익었나 봐."
우리 둘은 부추씨와 누워서 자고 있는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포노 사피엔스라는 말처럼 요즘 아이들이 휴대폰에 익숙한 세대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된 순간이었다. 부추씨라서 다행이지 값비싼 물건이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이 귀여운 선물은 지금 할머니 댁 작은 화분 위에서 무럭무럭 자라며 가끔 부추전으로 변신해 우리 식구의 입을 즐겁게 한다.
요즘 아이들은 참 빨라
어른들은 종종 요즘 아이들이 참 빠르다는 말을 한다. 본인이 특정한 시기에 접해보았거나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거나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들을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더 이른 나이에 경험하거나 도달하는 것을 목격할 때 주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은 되바라졌다는 부정적인 뉘앙스와 함께 아이들에게 눈을 흘기는 어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기특하고 대견함을 품은 긍정적인 미소와 함께 아이들을 사랑스레 바라보는 어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반응이 긍정이건 부정이건 어린 세대가 그 이전 세대에 비해 모든 것이 빨라지는 것은 단순히 아이들이 성숙하거나 똑똑하거나 되바라져서가 아니다. 이전 세대가 겪었던 것을 다음 세대는 필연적으로 더 이른 나이에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서야 TV를 접한 세대와 어릴 때부터 TV를 접한 세대는 TV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삐삐, pc, 폴더폰, 스마트폰 모두에 해당되기도 한다. 이런 기술의 진보는 필연적으로 세대의 인식과 감성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세대는 기술과 함께 구분 지어지고 이전 세대는 다음 세대를 향해 늘 "요즘 아이들은 참 빠르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스마트폰과 처음 마주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게임을 하고, 쇼핑을 하고, 계좌이체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4살 아들은 그러한 일들이 그다지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저 당연한 일, 원래부터 그렇게 된 일, 변곡의 시점이나 그 이전의 삶이 어땠는지는 전혀 상상할 수도 상상할 필요도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테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대를 동시에 맞이하게 된다. 시대와 세대는 그래서 어찌 보면 동일한 단어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새 시대는, 새 세대를 통해서만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가 시대를 열고 시대는 세대를 만들어 낸다. 부추씨는 우리 집에도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대가 동시에 입장했음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