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진다는 것은 민감해진다는 것

때때로 약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by 정 호

올해 체육 전담을 맡아 3~4월 내내 강당에서만 수업을 하다가 PAPS(옛날 말로 체력장) 측정을 위해 운동장 수업을 일주일 정도 했더니 별로 뜨겁지도 않은 햇빛이었건만 오랜만에 조우한 태양빛을 마주하며 두 팔과 얼굴은 낯가림이 심했던 모양인지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라 수줍음을 품은 열기를 차르륵 뿜어대고 있었다.


피부가 따갑기도 하고 이 상태로 햇빛을 조금만 더 쬐면 한 번 타버린 피부가 왜인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쿨토시를 착용하기로 했다. 쿨토시는 정확하게 이름값을 해냈다. 쿨토시를 착용하자마자 신기하게도 착용하기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팔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을 때보다 한 겹의 쿨토시를 겹쳤을 때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나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쿨토시 소재의 어떠한 성능 때문이리라. 한데 신기했던 것은 양쪽 팔이 똑같이 시원한 것이 아니라 오른쪽 팔이 더 확연하게 시원했다는 점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자정이 가까워진 늦은 시각, 술에 취해 집에서 라면을 끓여 식탁으로 옮기다 떨어뜨려 발등에 2도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화상을 입은 피부는 첫날에 부풀어 오른 개구리 볼처럼 빵빵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물 벗듯 껍질이 벗겨지고 약 한 달에 걸쳐 서서히 새살이 돋아났다. 새살이 돋아나는 그 과정이 참으로 지난하고 고통스러운데 새살이 완전히 피부를 덮기 전까지 화상을 입은 발등은 아주 연약한 상태가 된다. 그때에는 조금만 차갑거나 조금만 뜨거운 것이 닿아도 피부가 멀쩡했을 때에 비해 훨씬 더 뜨겁고 차갑게 느껴진다.


쿨토시도 아마 그런 것 아니었을까. 태양빛에 조금 더 빨갛게 그을린 팔뚝이 쿨토시의 작디작은 냉기를 조금 더 시원하고 차갑게 받아들였던 것은. 연약해진다는 것은 그래서 꼭 나쁘지만은 않다. 작은 자극을 크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니까. 작은 자극을 크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마치 현미경을 탑재한 채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연약하기 때문에, 연약해봤기 때문에, 연약해졌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고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느끼고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연약함은 피해의식, 자격지심, 자기기만, 자기 연민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세심함, 기민함, 배려와 같은 일종의 완충적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기질을 발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완충망의 역할을 한다. 어쩌면 사회라는 것은 연약한, 연약해진, 연약해봤던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촘촘한 그물망에 힘입어 그 형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약해본 적 있는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의 한계치가 곧 그물의 탄력성의 한계치와 같을 테다.


삶이 지루하다면, 더 많은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다면, 우리는 때때로 약해져야 한다. 약해졌을 때에만 비로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때에 느껴지는 것들은 나에게 새로운 힘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약함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힘으로 또 다른 약함을 재건해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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