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을수록 웃지 않는 이유

웃고 웃고 웃자

by 정 호
오늘도 많이 웃고 와


아침에 아이와 헤어지며 아이에게 건네는 인사. 오늘 하루도 그저 별 탈 없이 웃음으로 하루를 가득 채웠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나뭇잎 굴러가는 소리만 들려도 흘러넘치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어, 말 그대로 배를 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음을 터뜨리던 시절이 있었다. 찰랑이며 빛나는 물비늘처럼 온 세상을 가득 채울 듯 반짝이며 흐르던 웃음을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왜 웃지 않는 것일까? 세상에 나쁜 사람들만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세상에 좋은 사람이 차고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라는 외부 요인이 내 웃음의 양과 질을 좌우한다고 결론지어 버리자니 이 역시 탐탁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한 답이라고 골라 내어놓기가 어쭙잖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 가고 있네
혀끝을 감도는 whisky on the rock

- 우리들의 블루스 ost -


삶은 사람의 가슴을 갈아내어 희로애락의 감정이 모두 허상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일까?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희망 같은 달콤한 것들은 모두 손 닿을 수 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하게 붙잡고 싶었던 것들은 희미해져만 가고 희미했던 두려움들은 점점 더 선명해지기 때문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를 알아간다는 말과 같다. 나를 알아간다는 말은 색이 뚜렷해진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두고 "고집불통인 노인네"라거나 "꼰때"라고 표현하며 독선적인 그들의 모습을 혐오하기도 한다. 그런 식의 표현은 때로는 맞는 말이 되기도 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두가 꼰때나 고집불통 노인네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가치관이 점차 자리 잡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리고 그것은 주관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매력을 높여주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고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나의 색이 점차 진해져 온 만큼 남들의 색 또한 짙어졌으리라. 진해진 색의 깊이만큼 서로 다른 색의 마주침은 커다란 파열음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합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말랑말랑하여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수월했던 어린 시절에는 다른 형태의 모양에 나를 맞추기가 쉬웠지만 모양과 색깔이 굳어져 단단해져 버린 이후에는 외부의 상태에 나를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확고한 신념을 갖춘 사람이라는 영예를 얻는 길이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유연함을 잃은 똥고집 노친네가 될 수도 있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먹고도 소년과 소녀의 웃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귀한 존재로 빛을 발한다. 그들은 유연하며 포용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유연함은 어린아이들의 유연함과는 다르다. 단단함을 거쳐온 유연함인 탓이다. 나를 비틀고 구겨가며 남들에게 맞추기 위한 유연함이 아니라 자신의 형태는 지키되 나와 다름까지 포용해낼 수 있는 부드러움이기 때문이다.


갑과 을이라는 지위적 낙차에 의한 비굴의 웃음 말고, 눈치코치를 잃어버린 채 시도 때도 없이 남발하는 백치의 웃음 말고, 옹색함을 품을 줄 아는 넓은 도량이 느껴지는, 차가움을 어루만질 수 있을 만큼의 따듯함을 품고 있는, 가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진짜 그의 삶을 통해 배어 나오는 그런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 부처의 미소를 닮고 싶다.


어쩌면 웃음이라는 것도 나이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해 가는 것은 아닐까. 유아기의 비명에 가까운 괴성에서 청소년기에 세상 모든 즐거움을 담고 있는 듯해 보이는 청명함으로 그리고 종국에 가면서 소리는 점차 희미해지고 얼굴에 슬며시 드러나는 미소의 형태로.


무엇이 되었건 나쁜 웃음은 없으리라,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괴성을 지르며 기쁨을 표현하는 것도,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도 모두 기쁨과 즐거움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어떤 형태가 되었건 그저 많이 웃는 하루가 되기를, 나이를 먹는다고 웃음까지 집어삼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