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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지금 그럴 시간 아니야 집중해

배운 대로 써먹기

by 정 호
아빠: 자 아빠는 여기에다 놓을 거야

아들: 그럼 나는 여기에다 놓을 거야

엄마: 여보 근데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아빠: 응? 무슨 일?

아들: 얘기하지 마 아빠. 지금 그럴 시간 아니야. 집중해


아들과 보드게임을 하다가 집중하지 않는다고 혼이 났다. 어찌나 호되게 말을 하던지, 진짜로 혼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게임하다가 얘기도 좀 할 수 있지. 아들 너무 가혹한 거 아니니...

며칠 전 게임을 하다가 이기고 싶으면 집중하라고 이야기를 한 번 했더니 고걸 고대로 써먹는 이 녀석을 보고 있으니 참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각심이 들었다. 정말 아이는 스펀지처럼 부모의 말과 사상을 흡수한다는 것.


학교에 있으면서 부모와 학생이 무척이나 닮아있는 것을 수도 없이 목격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은 단지 유전자에 의해 물려받는 생리적 특성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용하는 언어습관이나 말투, 눈빛, 어른을 대는 태도나 불편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의 대처방식 등 꽤 디테일한 부분에 있어서도 부모와 자식은 닮아있다. 그것은 유전적 기질을 넘어서는 어떤 환경적 요인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분명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온 부모와 함께하며 보고 들은 것들이 체화된 습성이다. 그래서 아주 예외적인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자식은 부모를 닮아있다. 자식은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은 그래서 기쁘고도 무섭다. 자식의 잘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의 모습을 빼다 박은 것 같아 기쁘면서도 자식의 못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역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족한 부모들은 자식의 모습을 본인의 입맛에 따라 선택적으로 바라본다. 잘난 모습은 나를 닮아 그렇지만 못난 모습을 보일 때면 쟤가 대체 누굴 닮아서 저러나 하는 마음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드러낸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다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부모는 그래서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정말로 자식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부모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입에서 나온 "집중해"라는 말과 아이의 입에서 나온 "집중해"라는 말 사이에는 분명 조금의 차이는 있다. 아이는 게임에서 이기기를 원했고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설렁설렁해서는 그 어떠한 것과의 대결에서도 이길 수 없는 까닭이다. 나의 입에서 나온 집중하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방법론에 가까웠을 테다. 아이도 나와 같은 마음에서 집중하라고 외쳤던 것일까. 아마 아니었을 테다. 아이가 나에게 삶의 방식에 대해 일갈을 했을 리 만무하다. 그보다는 아마 온전히 함께 해달라는 마음, 한눈팔지 말고 자신을 바라봐 달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어찌 아이를 바라보는 일을 게을리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결핍이 있어야 사람이 성장한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늘 충만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에서 비롯되는 안정됨을 바탕으로 앞으로 겪어나갈 무수한 결핍을 헤쳐내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너와의 시간에는 집중하려 애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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