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 외롭다. 언어의 확장과 세상과의 연결
아빠: 목욕을 너무 오래 했다. 이제 머리 감고 나가자~
아들: 엄마랑 아빠가 좋아
아빠: (이 녀석이 꼼수를..) 그래 알았어~ 그래도 이제 머리 감고 나갈 시간이야~
엄마: 엄마랑 아빠도 우리 아들이 좋아. 아들은 엄마랑 아빠가 좋은 이유가 뭐야?
아들: 이유가 무슨 뜻이야?
아빠: 왜 좋냐는 뜻이야. 엄마랑 아빠가 왜 좋아?
아들: 음... 그냥 좋아
엄마: 엄마 아빠도 아들이 그냥 좋아. 없으면 절대로 안될 만큼 소중해
아들: 없다는 게 뭐야?
엄마: 엄마, 아빠, 아들 이렇게 셋이 지금 목욕탕에 있지? 그런데 아들이 목욕을 다하고 엄마랑 나가면 아빠가 혼자 남지?
아들: 응
엄마: 그때 아빠는 이 목욕탕 안에 혼자 남아서 엄마랑 아들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거야. 눈앞에 있다가 사라지는 게 없다는 뜻이야.
아들: 아빠 우리가 나가면 엄마랑 내가 없어지는데 외롭지 않겠어?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묻는 것인지 요즘 들어 구분이 잘 안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히 해당 단어의 뜻을 몰라서 묻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졌는데 요즘은 본인이 이미 잘 사용하고 있는 단어의 뜻을 물어오곤 하여 이것을 왜 묻는 것일까 의아할 때가 많다.
없다는 게 뭐야?라는 물음 역시 그랬다. "아빠가 집에 없다. 엄마 어디 갔어? 장난감이 우리 집에 없고 할머니 집에 있어." 등등 이미 없다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며 상황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는데 없다는 게 뭐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이 녀석이 왜 자꾸 이러나 의아한 마음이 들다가도, 혹시 보다 의미를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라거나 단어의 의미를 확장하는 아이들만의 어떤 언어 습득 방식인가 싶은 마음에 물어올 때마다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곤 한다.
이전까지 아이의 머릿속에서 '없다'라는 단어가 단순히 '있다'의 반대어로써 기능해왔다고 한다면 "엄마랑 내가 없어지는데 외롭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진 순간부터 아이에게 '없다'라는 단어는 외로움과 연결되어 세상을 보다 확장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단순히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넘어 맥락을 들여다볼 줄 알게 되었음을 뜻한다.
없음 = 외로움의 도식을 완성시킨 아이는 이후에 없음과 무엇을 연결시키게 될까. 없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어떤 이는 결핍, 소멸, 허전, 공허, 가난, 비루함 등을 연관시킬 테다. 하지만 한편으로 없음이라는 단어와 자유, 해방, 진실, 혼란, 행복 등을 연결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어떤 이도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더 나은 삶이라고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나 가능하다면 어떤 하나의 고리에 보다 많은 것들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고리에 연결되는 것들이 많을수록 삶은 필연적으로 무거워질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 무게를 짊어지고 감당하는 사람만이 넓고 깊은 삶의 지혜를 통해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연결이 빈약한 사람들은 경험과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상상력이 부족한 이유는 자신의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런 매력이 없다. 매력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단순이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일 테지만 그보다 오히려 삶의 전반에 걸쳐 매력적인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건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그것은 성공을 원하면 성공의 발판이 될 것이며 자유를 원하면 자유의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고리에 또 무언가를 연결해낼 수 있도록, 그렇게 너와 내가 꽉 찬 하루와 일 년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