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일도 좀 해야지

쓸모, 효용, 효율, 가성비, 목적은 잠시 내려두고

by 정 호
쓸모라고 여긴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표식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짐이었다. -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 (108p)


쓸모란 무엇인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보통 쓸모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수단의 성격을 띤 채 존재한다.


망치의 쓸모는 못을 박는 데 있다. 못을 박지 못하는 망치는 쓸모없는 망치가 되어버린다. 못을 박지 못하는 망치는 즉각 고물상에 가야 하는 신세가 된다. 못을 박지 못하는 망치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연필깎이의 쓸모는 무엇인가. 연필을 깎아내는 데 있다. 오래도록 연필을 깎아 칼날이 무뎌진 연필깎이는 어느 순간 연필을 깎아낼 수 없게 된다. 그 순간 연필깎이의 쓸모는 수명을 다한 셈이다. 쓸모를 다한 연필깎이는 더 이상 연필깎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물의 쓸모는 이미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굳어진 것들이다. 굳이 망치와 연필깎이를 못을 박거나 연필을 깎는 것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일은 없다. 그 이외의 용도에 맞는 물건이 거의 모두 존재하거나 새로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물을 대할 때 사용하는 쓸모라는 기준을 인간에게까지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쓸모없는 놈"이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는 그런 언어의 감옥에 갇혀버린 사람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온통 쓸모와 효용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회사원의 쓸모는 회사 수익 극대화에 있다. 수익을 내는데 방해가 되거나 수익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고 판단되는 즉시 회사는 그 직원을 품고 갈 이유가 없어진다. 쓸모가 없어짐과 동시에 그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이것이 어디 회사원뿐이겠는가. 대부분의 돈을 벌기 위한 일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회사원이건 자영업자건 공무원이건 전문직이건 모두 어떤 세상의 기준에 의한 쓸모를 강제당한다.


모든 업이 그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업의 쓸모에 압도되어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일만큼은 경계해야 한다. 일이라는 것은 사람의 생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그것이 결코 인간의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유능한 의사, 유능한 교사, 유능한 변호사, 유능한 기술자, 유능한 강사가 되는 것은 모두 훌륭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것만이 나를 규정하는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능해 보이는, 혹은 부의 힘으로 어떤 쓸모 있는 사람이든 모두 기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조차 간혹 극단적인 선택이나 우울과 불안에 잠식당하는 이유는 바로 그 쓸모에서 비롯된 허무, 혹은 본인이 설정한 쓸모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좌절감 때문인 경우가 많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좌절감이 찾아온다. 세상의 기준이 되었건 자신의 기준이 되었건 어찌 됐든 삶의 기준을 쓸모로 잡는 순간 그 쓸모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허한 마음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마음의 풍요는 쓸모로 가득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쓸모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백치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앞가림을 하며 자신의 업에서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취를 이루는 일은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쓸모 이외의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진짜 나를 알아챌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삶을 진짜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며 삶 이후가 두렵지 않도록 만드는 용기를 심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