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나만 보는 사람 말고 나를 볼 줄 아는 사람

by 정 호

우리는 언제나 밖을 본다. 그리고 멀리 있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갈망한다. 타인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외부의 기준을 살피느라 늘 분주하다. 그렇게 우리의 시선이 밖을 향해 있는 동안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자기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잃어버렸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를 알아가려 하는 모습은 그래서 애처롭고 불안하다. 스스로를 모르는데 타인에게 나에 대한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뿌리와 토대를 모르는데 무엇을 쌓을 수 있단 말인가. 알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 사람을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 혼자 상대방을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대의 입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해 듣는 것, 이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할 테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려본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통해 대강 짐작해본다. 저 사람의 말투, 표정, 사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갈등에 대처하는 모습, 아르바이트생을 대하는 태도, 몰고 다니는 차, 사는 동네, 옷차림, 직업, 사용하는 휴대폰, 이슈를 바라보는 자세, 정치적 포지션, 부모나 절친한 친구와의 전화통화를 할 때의 말투나 사용하는 단어, 죽은 동물을 바라보며 짓는 표정과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누는 감상, 이런 것들을 종합하여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미루어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한 사람이 두르고 있는 물질적 혹은 비물질적인 유산의 일부를 알아챌 수 있다고 한들 한 사람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러한 힌트들은 그저 통계의 범위 안에서 대강의 특징만을 그려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통계에는 늘 예외가 있고 수많은 조건들이 조합될 때 그 경우의 수는 무한에 가까워진다.


그렇다면 한 사람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에서 조금이나마 더 선명한 색을 입히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사람의 입을 통해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들어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바로 한 인간에 대한 나와 타인 간의 인식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밑천이 얕은 사람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 타인이 겉으로 대강 훑어봤을 때 짐작할 수 있는 얼마간의 정보 이상의 것을 결코 타인에게 줄 수 없다. 자기를 들여다본 적이 별로 없기에 금세 퍼올릴 것들이 바닥나기 때문이다.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퍼올린다. 슬픔이건 고독이건 기쁨이건 희망이건, 그런 사람은 매력적이다. 여전히 자신에 대해 궁금하기 때문에 늘 눈이 빛난다. 그렇게 늘 분주하게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설명해보라는 타인의 요구 앞에 언제든 주절주절 자신의 것들을 늘어놓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이 사람을 알아가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자신을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매력이 없다. 관계를 맺고 그에 대해 짐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이며 그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내용 역시 빈천하여 금세 궁금증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한 사람에 대해 모두 알게 되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스스로를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들끼리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대강의 모습만 스케치하며 그것이 전부라 여기고 살아가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 중 스스로를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고독해진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모르고 있던 자신에 대해 점차 알게 되고 자신에 대한 앎이 깊어질수록 타인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짜 관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에 대해 설명해낼 수 없으므로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원하는 깊은 관계로 들어설 수 없다. 또한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자신만큼 타인 역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주길 기대한다. 알고 보니 내 안에 이런 것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관계 맺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은 귀하다. 수가 적어서 귀하고 가치롭기에 귀하다. 그런 귀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은 더욱더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