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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회색 인간

문화와 예술이 왜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

by 정 호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작가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어두운 배경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무인도, 낮 혹은 밤에만 활동할 수 있는 좀비로 나뉘어 버린 인간들, 인조인간, 갑작스러운 신의 계시, 신인류, 지구종말, 지옥, 주술, 우주인, 멈춰버린 시간, 뱀파이어, 피노키오 등의 소재는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그 면면을 살펴보면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하기 위해 분주했을 작가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서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인간의 어두움을 작가는 덤덤하게, 하지만 울퉁불퉁 도드라져 보이게 갈고닦아낸다. 그러나 어두운 상황 설정과 달리 작가의 문체는 그리 어둡기만 하지 않다. 구체적인 묘사나 비유적인 표현이 많지 않고 빠른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설명으로 작가는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자신의 주제로 빠르게 진격해 나간다. 그래서 문장의 호흡이 빠르다. 빠른 전개와 직선적인 주제의 흐름은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소재도 다양하고 상황 설정도 모두 다르지만 작가의 이야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상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결코 이상향이 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예상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변수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중심 에너지다.


글을 배워본 적도 없고 평생토록 읽은 책이 10권이 채 되지 않는다는 김동식 작가는 겸손하다. 맞춤법이 틀려 독자들로부터 수도 없이 지적을 받고 개연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는 소설가. 그의 이야기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왜 그런 지옥이 펼쳐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그냥 무작정 다양한 지옥도가 펼쳐진 채 시작된다. 그런 이유로 아마 독자들은 개연성의 문제를 지적했으리라.


하지만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가 아니다. 그보다 오히려 그런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과 변해가는 모습, 살아남기 위한 본능 같은 것에 더 관심을 둔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글을 하나씩 올리다가 유명세를 타며 현재는 열 권이 넘는 소설을 출판한 인기 작가가 되었지만 그의 독서량이나 글쓰기에 대한 배움의 과정은 전무하다고 봐야 할 정도로 얕디 얕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고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는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


김동식 작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상경해 공장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그는 10년 동안 아연 주물 공장에서 각종 액세서리와 지퍼 단추 같은 것들을 만드는 일을 했다. 단순한 노동, 기계적으로 아연을 부으며 그는 무척이나 고독한 시간을 보냈을 테다. 그냥 무심히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그 지루한 시간 속에서 작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생각하고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의 세월 동안 그는 400여 편의 단편 소설을 구상해냈다. 그런 그의 이야기 안에 노동과 인간, 소외되는 인간과 자본, 지옥, 탈출, 외부세계 등의 소재가 풍부하게 녹아들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에, 앎으로 삶을 대하지 않고 삶으로 앎에 다가서는 형태의 생을 살아온 사람이기에, 작가의 이야기에는 전형적이지 않은 색다른 맛과 날것의 느낌이 있다. 생생하게 살아 뛰노는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과 하나 됨을 느낀다.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생각과 감정을 느끼며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 갔다가 끝날 때 즈음 나오는 한방의 반전에 짧은 탄식을 내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몰입과 공감, 그리고 반전까지 책임지는 작가의 이야기 구성에 빠져들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본다.


많은 이야기 가운데 회색 인간을 첫 번째 이야기로 배치한 이유는 명확하다.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린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이 문화임을 힘주어 말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것은 곧 희망이 된다. 지옥을 헤매고 무인도에 갇혀 있으며 지구 종말의 위기에 처해 있어 당장 내일 죽게 될지 모를 상황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소설을 비롯한 여러 문화적 행위들이 바로 그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책 회색 인간의 첫 번째 이야기 "회색 인간"은 어느 날 땅 속 지저 괴물들에게 납치되어 죽을 때까지 땅을 파야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땅을 파내는 삽의 자루를 씹어먹고 오직 식욕만이 남은 채 무의미한 땅파기만을 지속하고 있는 인간들 틈에서 어느 날 한 여자가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여자에게 처음 돌아온 것은 따귀와 돌팔매질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어느 한 남자가 벽에다 돌멩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저 괴물들이 자유를 약속한, 할당된 땅을 파서 탈출하기에도 부족한 노동력인데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납치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분노했다. 노래와 그림은 지저 세계에서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으며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있는 쳐다볼 가치 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래와 그림을 반복하던 그들에게 어느 날 자신의 먹을 것을 선뜻 내어주는 사람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본인이 죽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꼭 기록해 후대에 전해달라며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눠주는 인간의 모습에서 가장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는, 잿빛의 빛바랜 인간에서 선명한 색을 가진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희망의 근거가 문화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문화란 그런 것이며 예술이란 그런 것이라고, 그것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어떤 작업이라고, 무수히 많은 예술 작품들에서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처럼 생생하고 선명하게 그 의미를 전달해내는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간들에게 문화는 하등 쓸모없는 것이 되지만 반대로 그 밑바닥의 삶을 버텨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 또한 문화의 힘이다. 문화란 그런 것이다. 존재하지 않고 애써 찾아봐주지 않을 때 인간의 삶은 잿빛 투성이의 회색이 되지만 문화를 품고 살아갈 때 그것은 한 줄기 희망의 꽃을 피워낸다.


작가의 작품을 하나하나 모두 열거할 수 없어 특히 인상 깊었던 몇 작품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무인도와 부자 노인"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그것이 비록 거짓된 것일지라도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의지할 것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돈인가 종교인가 사랑인가. 생각해보면 이런 모든 것들은 실체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직 어떤 강력한 신뢰에 의해서 실존한다고 믿어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뢰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신뢰가 무너지는 일은 그래서 위험하다. 잘 갖춰져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시스템과 거대해 보이는 체제도 구멍 난 둑처럼 한순간에 무너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의 소원"은 권력과 자격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신의 계시로 인류 가운데 선택받은 한 인간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음성이 전 세계인의 귀에 들리게 된다. 그와 동시에 선택받은 인간에겐 한줄기 빛이 쏟아져 조명받게 된다. 그 대상은 연쇄살인마에서 장애인으로, 장애인에서 평범한 한 사내로, 그리고 세계적인 재벌로 옮겨간다. 옮겨가는 이유는 신탁을 받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불안. 그들을 끌어내리는 과정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공감을 자아낸다. 완벽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렇게 신탁을 받은 사람은 바뀌고 바뀌어 맑고 순수한 어린 소녀에 이르러서야 전 인류의 동의를 얻게 된다. 다만 순수해 보이는, 선해 보이는 소녀의 소원은 예상치 못한 재앙을 불러오고야 만다.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는 시기에 따라 뒤바뀌는 주류와 비주류 간의 반목에 대한 이야기. 모두가 예민해질 때 비로소 차별이 사라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함축한다. "사망 공동체"는 타인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과 직결될 때, 인류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긍정적인 연쇄 반응들 속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과연 없겠느냐는 물음. 저승 놈들의 술수로 인간 하나가 죽으면 영혼의 단짝도 함께 죽도록 바뀌어버린 목숨의 메커니즘 덕분에 아무도 죽지 않도록 적극적인 기술 개발과 호혜적인 태도로 서로를 살피는 인류애적 사랑이 실현되었지만 그때부터 죽음의 문턱을 넘은 저승의 영혼들도 동시에 늙지 않게 되어 영원히 지옥불의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은 선의의 행동에서는 결코 의도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을 테다. "공 박사의 좀비 바이러스"와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는 줬다 뺐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애초에 몰랐으면 차라리 괴롭지 않았을, 잠시 맛본 환희와 기쁨은 이후에 다가올 박탈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짧은 몇 줄의 글로 작가의 소설을 읽은 뒤 느꼈던 놀라움과 즐거움과 희열을 제대로 표현해내기 어렵다. 순수하게 읽는 행위를 판단함에 있어 재미와 감탄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간 읽어왔던 책들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훌륭한 책이라고 감히 평하고 싶다. 읽는 재미, 생각지 못했던 반전,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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