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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방구석 미술관

태어나려는 자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세계를 뚫어내야 한다

by 정 호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이 유명한 구절은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등 자신만의 독창적인 길을 개척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이들의 삶을 몹시도 분명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을 지향점으로 삼아 출판된 도서 "방구석 미술관"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미술인들의 삶을 조명하며 그들이 어떤 세상을 뚫어내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는지 그려낸다.


뭉크, 프리다 칼로, 드가, 고흐, 클림트, 에곤 실레, 고갱, 마네, 모네, 세잔,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뒤샹. 그림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14명의 미술가의 삶을 천천히 훑다 보니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평생 동안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주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뭉크는 죽음을, 프리다 칼로는 고통을, 드가는 하류층 여성을, 고흐는 색감을, 클림트는 반항심을, 실레는 성을, 고갱은 원시와 야생을, 마네는 일상을, 모네는 빛을, 세잔은 조화와 균형을, 피카소는 형태를, 샤갈은 차별과 성경을, 칸딘스키는 느낌을, 뒤샹은 개념을.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주제에 파고들며 일생동안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예술가가 자신만의 주제를 찾아내는 계기는 다양하다. 뭉크는 이른 나이에 엄마와 누이를 잃는다. 그리고 자신 역시 병약한 몸을 타고났다. 첫사랑은 화류계 여자로 그녀의 가벼움으로 인해 끊임없는 질투를 느껴야 했고, 두 번째 사랑은 절친에게 빼앗겼으며, 세 번째 사랑은 자신에게 너무도 집착한 나머지 권총으로 자살소동을 벌이는 것을 말리다가 자신의 손가락에 관통상을 입고 만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뭉크는 자신의 모든 것이 죽음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필연적으로 두렵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프리다 칼로는 어떠한가. 고통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그녀의 작품 안에는 처절한 고통들이 담겨있다. 그녀는 어떤 고통을 겪으며 살아왔길래 작품 안에 끊임없이 고통스러움을 녹여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녀는 여섯 살에 소아마비로 오른발의 성장이 멈추게 되며 죽기 직전에 절단하기에 이른다. 열여덟에 교통사고를 당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두 번의 임신을 도전하지만 두 번 모두 앞선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남긴 신체의 한계로 인해 유산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으로 그녀의 불행은 끝나지 않는다. 남편이 자신의 여동생과 바람이 나는 것을 알게 된 프리다 칼로는 복수를 위해 맞바람을 피운다. 불행의 여신이 있다면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 사람의 인생에 이토록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몰아놨을까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이토록 고통으로 가득한 삶이니 작품에 고통이 새어 나오지 않고 어찌 삶을 지탱해 낼 수 있었으랴.


삶은 거센 물결과 고통을 헤치고 나아가는 투쟁이자, 끝없이 밀려드는 적들과의 투쟁이라고 했지요. 인간은 누구나 자연이 각자에게 선사한 것을 즐기기 위해 홀로 투쟁해야 합니다. - 130p. 에곤 실레가 후견인에게 보낸 편지 중 -


에곤 실레에게 고통은 성이요 밀려드는 적이란 기존의 체제였을 것이다. 에곤 실레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매독으로 사망하고 어머니 역시 감염되어 있었는지 그의 누이 역시 선천성 매독으로 사망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에곤 실레는 자신 역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었을 테고 "성"이라는 것은 아름답거나 쾌락적인 것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고 두려움을 주는 대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1차 대전 막바지에 스페인 독감으로 자신을 포함한 일가족이 모두 사망했다는 그의 최후는 비극적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민음사에서 출판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의 표지가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다자이 오사무와 에곤 실레는 닮아 있다. 비극적인 삶이 그러하고 서른 언저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점이 그러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려 애썼다는 점, 꾸미지 않은 날 것을 들여다보려 했다는 점이 그러하다. 아마 민음사에서도 두 예술가의 그런 공통점을 발견하고 책의 표지로 채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갱은 6세가 될 때까지 페루에서 성장한다. 그 이후 프랑스로 귀국하여 청소년 시절을 보내지만 야생과 자유가 그리워 5년간 선원생활을 하며 세계를 돌아다닌다. 어머니의 사망으로 프랑스에 다시 귀국하여 증권맨이 되어 결혼도 하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가 취미로 시작한 그림에 흠뻑 빠지게 된다. 가볍게 생각했던 취미는 점차 본업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고 회사를 그만두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아내는 살기 위해 고갱을 버려둔 채 친정으로 발길을 돌린다. 가족에게도 외면받았던 고갱이지만 그는 자신의 꿈과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대자연의 한 복판으로 뛰어든다. 문명의 숨결이 아직 닿지 않은 야생으로 들어가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이르는 그는 결국, 고갱 하면 누구나 떠올리게 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창조해낸다. 어린 시절 각인된 야생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갈망했던 고갱은 대자연을 찬양하는 예술가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어 여기에 모두 나열할 수는 없지만 드가, 고흐, 클림트, 마네, 모네, 세잔,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뒤샹 모두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평생토록 그것에 대해 고뇌하고 몰두하며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연마와 숙성을 거쳐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세계는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세상이 된다.


그렇게 사실 표현에 중점을 둔 고전적 표현 양식에서 작가의 주관적 체험이 더 중요하다는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고 그 이후에도 후기 인상주의, 표현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추상주의, 초현실주의 등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미술계에 연속적으로 출현하게 된다. 완전히 단독적이며 기존에 없는 새로움과 고유함을 바탕으로 태어나려는 자는 기존 세계를 깨뜨릴 수밖에 없다. 이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바래 마지않는 경지이며 그것이 곧 개성이자 아이덴티티일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해낸 사람들의 멋짐이 드러나는 구절이 있어 이곳에 짧게 소개한다.

1874년 마네와 매우 친했던 드가, 모네, 르누아르가 살롱전의 보수성에 반대하며 '제1회 인상주의전'을 여는데요. 이때 성공적인 전시를 위해 그룹의 정신적 지주인 마네에게 동참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마네는 단칼에 거절합니다. 자신은 살롱전에 출품해 인정받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 방구석 미술관 176p -


할아버지는 시장이었고 아버지는 판사였던 마네는 당시 파리 사회에서 권력의 중심이었다. 당연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마쳤고 국가가 주최하는 권위적인 전시와 살롱에서 입상하는 것을 목표로 성장하게 된다. 앞서 살펴본 나만의 미술을 창조하겠다는 광야의 미술가들과는 다르게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마네는 창조자로서 미술계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살롱전에 출품하여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겠다는 태도만큼은 결코 꺾지 않았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마음으로 기존에 없던 그림을 그려냈던 마네였지만 기존의 가치 역시 무시할 수 없다며 그곳에서 인정받기 위해 인상주의전에는 참여하지 않고 살롱전에 출품하겠다는 마네에게서 고집불통의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이를 두고 단순히 고집을 꺾기 싫어 아집에 가득 찬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낸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멋진 신념의 부딪힘 정도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저런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아무렇지 않게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교류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의 멋이 드러난다. 각자 갈길을 가다가 때로는 뭉치고, 때로는 부딪히더라도 관계를 결코 끊어내지 않는 것. 그것은 서로에 대한 존경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겪지 않은 것은 쓰지 않았다고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는 말한다. 미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난 뒤 아니 에르노의 말이 미술가들의 작품 위에 포개어진다. 그들의 고통, 그들의 두려움, 그들의 경험이 곧 그들의 작품 세계의 밑바탕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디 미술가들 뿐이겠는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건 철학을 하는 사람이건 소설을 쓰는 사람이건 모두 마찬가지일 테다. 자신이 살아오며 겪었던 모든 일들이 그들의 작품 세계에 녹아들어 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신의 삶을 피하지 않고 정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 그에 더해 새로움을 찾아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 내딛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양질의 도서는 성장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리고 마구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든다. 이 책이 그런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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