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처음에 대한 격려
안녕하세요, 시 쓰는 이소호입니다. 나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인사다. 이 산문은 내가 '시 쓰는 이소호'라는 인사를 건네기까지의 삶을 담았다. 사실 담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무수히 버렸다. 이 이름을 가지기 위해, 웃기지만 그 인사를 건네기까지 무엇을 버렸는지를 썼다. 나는 교우 관계를, 과거를, 기억을 버렸다. -중략-
그래서 '시 쓰는 이소호'가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정해 주신 '이경진'이라는 이름까지도 버렸다. - 프롤로그 중 -
낭독회에는 작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유리창 너머의 방, 그리고 일반 독자들이 앉아 있는 커다란 메인 홀이 있었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유리창 너머 비좁은 공간에 끼지 못한다는 것이 슬펐다. -중략-
나는 그냥 등단한 시인이 너무 되고 싶었기에 굉장히 체계적으로 투고 시스템을 짰다. -중략-
투고 일 년 차에 나처럼 모든 일을 그만두고 시를 쓰는 동료들을 많이 만났다. 투고 이 년 차가 되었을 때 대학원에 갔다. 투고 삼 년 차가 되었다. 이제 대학원이 고작 두 학기 남았다. 대봉투를 몇 개나 사서 부쳤는지 더는 셀 수 없다. 우체국에서 느끼는 열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투고 사 년 차가 되었다. 11월 27일이 생일이었던 내 친구가 전화로 이렇게 말을 했다. "경진아 이상하지. 꿈을 꾸는 것은 저주에 걸리는 것만 같아. 그래도 나는 그 저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너만 행복하다면" 물론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월 뒤 기적처럼 나는 등단한 시인이 되었다. -283p
처음은 그러하다.
가장 엉성하며, 의뭉스럽고, 불분명하다.
처음은 늘 그런 것이다.
생각해 보니 처음은 멋질 필요가 없다.
그냥 다음 세계로 넘어갈 힘만 가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