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도 떨어지지 말자는 말 그만해, 내가 금방 오니까

부모를 위로하는 아이의 의연함

by 정 호
아들: 엄마 오늘 월요일이라서 회사 가야 돼?

엄마: 그럼 회사 가야지. 회사 다녀와서 저녁에 재미있게 같이 놀자

아들: 응.

엄마: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그렇구나? 엄마도 그래.

아들: 응

엄마: 엄마가 얼른 회사 다녀올게. 우리 한시도 떨어지지 말자

아들: 한시도 떨어지지 말자는 말 그만해, 내가 금방 오니까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아이의 곁에서 아이를 보살피지 못하는 것에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월요일 아침이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꼈던지 평소보다 더 꼬옥 안아주며 얼른 다녀오겠노라고, 떨어져 있는 동안 잘 지내고 있으라고,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헷갈리는 말을 되뇌곤 했다. 아이 역시 일주일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들어온 뒤로 주말을 온통 부모와 함께 보낸 뒤 찾아오는 월요일 아침이면 매번 물어오곤 했다. 오늘은 월요일이라서 엄마 아빠가 회사에 가야 하느냐고.


몇 번의 그런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며 우리 부부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금방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내뱉곤 했던 우리의 말을 아이가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것을 보며 아이가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있는 모양새에 기가 막혔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금방 돌아오니까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야?"

"응"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를 달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이 명약관화한 일일 텐데 오히려 반대로 아이가 부모를 위로하는 꼴이라니. 이것을 대견하게 보아야 할지 염려스럽게 생각해야 할지 잠시 고민스러운 시간이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감을 느낀다.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터라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형성된 삶의 관성은 여전히 삶의 전반을 지배하며 의존적인 태도나 스스로의 삶을 제대로 가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과 마주할 때면 금세 인내심의 바닥을 거칠고 흉폭하게 드러내도록 마음의 메커니즘을 설계하였다.


메마른 땅은 필연적으로 거칠게 갈라질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아이의 삶은 촉촉한 온정을 충분히 머금길 바랬다. 그런 생각으로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니 가끔 아이의 입에서 나이에 비해 의젓하게 느껴지거나 대견해 보이는 말이 튀어나올 때면 혹시 내가 충분한 따스함을 전해주지 못했나 싶은 마음이 들어 그 기특함을 칭찬하기에 앞서 날카로운 불안감이 재빠르게 품을 파고든다.


혹여나 나의 삶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내가 살아온 방식을 아이에게 무의식 중에 강요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충분한 사랑으로 무한한 가능성의 토양을 다져두기도 전에 존재의 자립을 강요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이를 대하는 말과 태도와 눈빛을 되감아 하나씩 차근히 짚어 살펴본다.


아이의 말 한마디와, 아이의 행동 하나에 부모는 온 우주를 헤집어가며 그 말과 행동의 원인을 반추해 나간다. 혹여나 내 잘못 때문은 아닐까, 나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끊임없는 불안이 파생하는 자기반성 속에서 부모는 부모가 되어간다. 그렇게 청춘은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