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모르는 것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자

by 정 호

"모두가 각자의 짐을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짐의 종류와 무게를 서로가 알 수는 없지만 짊어진 짐에 따라 각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만큼 멀어진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늘 타인과 부딪히며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되뇌는 말이 하나 있다.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이 말이 좋다. 타인이 짊어진 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람의 세상에선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믿어주는 일. 그것은 알지 못하는 사람과 상황에 대한 겸손이자 그래서 필연적으로 딸려올 수밖에 없는 배려의 표현이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넘어선 어떤 것과 마주할 때면 놀란 토끼처럼 눈을 커다랗게 뜨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는 이야기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뱉곤 한다. 교사들의 어린 시절 학업성취도를 조사해본 결과 평균 이상, 즉 우등생이었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결과를 산출한 어느 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조사 결과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 주변 동료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린 시절 공부를 못했다가 뒤늦게 정신 차려 교사가 된 케이스보다 어릴 때부터 어느 정도 공부를 잘해서 무난하게 교사가 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 배경 탓인지 간혹 왜 가르쳐도 가르쳐도 한글을 못 읽는 아이가 늘 교실에 존재하는지, 간단한 사칙연산을 왜 그렇게 어려워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있다.


"아니 그 아이는 도대체 왜 그렇죠?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어요"라는 말은 그래서 불편하다. 이해하지 않겠다는 냉담한 태도를 읽었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이 적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과도 같다. 경험을 넘어서는 이해라는 것은 애초에 몇몇의 사람에게만 허락된 선물 같은 통찰이니까.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아내의 집에 처음 놀러 갔던 날 받았던 충격이 아직까지 지워지질 않는다.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비 장인 장모님께 얼굴을 비치러 가끔 처가댁에 얼굴을 들이밀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왕래 이후 처음으로 처가에서 식사를 할 일이 생겼다. 예비 사위가 될지도 모르는 놈이 왔다고 장인 장모님께서는 소고기를 구워주셨다. 등심과 안심과 살치살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술에 취하지 말자는 다짐을 속으로 하며 식탁에 앉아있던 그때, 아내는 잘 구워진 소고기 한 덩어리를 집어 들어 접시에 올린 뒤 가위로 먹기 좋게 몇 덩이로 자르더니 "봄이야~"라고 외쳤다. 봄이는 아내의 집에서 키우던 애완견의 이름이다. 봄에 데려왔다고 해서 봄이가 되었다는 그 녀석은 그렇게 유유히 한 덩어리의 소고기를 입에 물고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사람이 먹기에도 귀한 소고기를 왜 개한테 주는 것인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함께한 세월이 길고 가족 같은 존재라고 한들, 개는 그저 개일뿐 사람과는 엄연히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 역시 경험을 넘어선 이해를 해내지 못하는 필부였던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은 꼭 필요하다. 우리의 경험과 인식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타인을 이해하기 귀찮아하는 마음, 즉 매정한 무관심을 바탕으로 뱉어내는 가식의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진실된 노력을 바탕으로 행하는 모르는 것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의 인정이 되어야 한다. 그제야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싸늘한 외면의 시선이 아닌 따듯한 이해의 눈빛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