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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거 기다리고 있었는데 왔어

기대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달콤함

by 정 호
아빠 : 아들! 오늘 선물이 있어!

아들: 무슨 선물?

아빠: 지난 주말에 보드게임 카페 가서 재미있게 했던 게임 있지?

아들: 상어 아일랜드?

아빠: 응 그게 오늘 도착했대!

아들: 오래 걸리지 않고 벌써 도착했대?

아빠: 응 일주일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네?

아들: 나 이거 기다리고 있었는데 왔어.


보드게임을 즐겨하는 아들을 데리고 지난 주말 보드게임 카페에 다녀왔다. 집에서 몇 개 되지 않는 보드게임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가지런히 정돈된 수많은 보드게임 앞에서 아이의 눈은 환희와 함께 동그랗게 커졌다. 그 놀람과 기쁨의 감정에 충실하게도 아이는 보드게임 카페에 있는 유아용 게임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하나씩 자리로 가져와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게임을 하던 와중, 유독 마음에 들어 했던 게임이 하나 있었다. 상어가 천천히 다가오면서 다리를 부서뜨리는 게임인데 제한시간 안에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며 점수를 획득해야 하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상어의 움직임과 다리가 부서지는 액션이 나름의 스릴을 가져다준다.


보드게임을 즐긴 후 아이가 유독 좋아하는 모습에 집에서도 함께 놀면서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으로 구입해서 일주일 뒤에 집에서 함께 가지고 놀자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도착한 선물에 아이는 기쁜 마음을 한껏 표현했다.


아이는 기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장난감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스스로 택배 상자를 뜯고 비닐을 제거해달라고 다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에서 기다림 끝에 기쁨을 거머쥔 사람의 흥분과 설렘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기다림은 고통스럽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기다림 끝에 원했던 결과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그 갈증이 거대할수록 인생 자체를 갉아먹는 덫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능만 끝나면, 어른이 되면, 취직만 한다면, 독립을 한다면, 완벽한 내 짝을 만날 수만 있다면, 내 집 장만에 성공하면, 외제차만 타게 되면, 승진을 한다면, 하고픈 일을 하고 살 수 있게 된다면... 이런 생각들은 모두 꿈같은 기다림이다. 실현될 수도, 안될 수도 있지만 실현이 되건 안되건 결국 그 끝에는 새로운 기다림 혹은 여전한 기다림이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은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설렘은 일시적인 환각에 불가하다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가장 몰입도 높은 현재를 살게 한다.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며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서는 연인의 뒷모습에서 영원과도 같은 아득함을 느껴본 사람들은 안다. 그것은 사랑이고 기다림이며 가장 강렬한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증거라는 것을.


아이가 장난감을 기다리는 마음 역시 그 크기와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은 파동을 지닌 에너지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아마 고통스러우면서 기쁜 마음일 테니까.


기다려본 사람만이 그 끝에 달려있는 진한 달콤함을 향유할 수 있다. 그것은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자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허공을 걷게 할 수 있는 징검다리 같은 것이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에 가 닿기 위해서 때로는 의도적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설정해둘 필요가 있다. 기다림은 그렇게 우리가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강력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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