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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Dec 22. 2022

아는 놈들이 더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던데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온건한 중도'에 들어간다. 중도는 특정한 지지 정당 없이 상황이나 사건에 따라서 이쪽을 택할 수도 있고 저쪽을 택할 수도 있으나, 무엇보다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 중략 - '온건한 중도' 바깥에는 이데올로기 신봉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옳으며 나머지 전부는 틀렸다고 믿는다. 이데올로기 신봉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사실이 모순될 때는 대개 반응하지 않으며 타협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자신과 성향이나 신념이 비슷한 사람들과만 소통하며 자신의 신념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언론만 골라서 취하는 확증편향의 세계를 구축한다. 또한 그들은 오히려 다른 집단에 비해 교육 수준이 더 높은 편이다.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252p


우리는 흔히 무지를 편협제1 원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알지 못해서, 배움이 짧아서, 다양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생각 사실 절반 정답 불과하다. 분명 학습의 기회가 없어서 세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까막눈이 맑아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아집에 빠져있을지언정 타인에게 커다란 피해를 끼치기는 어렵다. 끄러움은 세상 앞에 나설 용기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큼의 성취를 일군 사람들이 더욱 편향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갈 확률이 높다.  이유는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찌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자신의 성취에 취해서 본인의 경험과 선택이 삶의 정답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금수저로 태어나 갖고 싶은 것들을 손쉽게 손에 넣으며 살아온 사람이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자수성가를 이뤄낸 사람이건 그들이 삶을 대하는 메커니즘은 대체로 결을 같이 한다. 그들의 공통된 신념은 "나는 열심히 살았으니 보상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자신의 의지와 성취에 대한 결과물에 대하여 그것은 공정하고 타당한 보상이라고 결론지어 버린다. 이런 생각이 더욱 무서운 이유는 자신이 이뤄낸 것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그 확신을 이어가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만 이런 생각의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고학력이나 유명세를 얻어 일종의 권력을 획득한 채 본인이 속한 사회적 그물 안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내가 만든 정답에 대해 지나친 확신을 갖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라면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 자리가 없다. 내가 틀렸으리라고 일말의 가능성조차 생각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확신은 양날의 칼이 된다. 자부심이 되어 사람을 자신감 넘치게 만들어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부심은 오만함으로 바뀌어 사람을 가장 볼품없는 상태로 내던지기 때문이다.


자부심이 오만함으로 바뀌는 순간,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람은 가장 확실하게 부끄러움을 잃어버린다. 내 선택이 맞았고 내 생각만이 옳다는 오만한 믿음은 다른 선택에 대해 열린 마음보다는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자신과 다른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차갑고 깐깐한 고집불통 옹고집 영감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오만함을 탑재한 소위 사회 지도층, 지역 리더라 불리는 사람들은 사회에 커다란 폐악을 끼친다. 성취에 대한 대가로 발언권이라는 커다란 영향력을 부지불식간에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들은 스스로의 노력과 성취의 대가로 얻어낸 영향력을 옳지 못한 방향으로 소진함으로써 다시금 자신의 영향력을 소실시키기도 한다.


각자의 결정이 가져오는 파급력은 결코 같지 않다. 오직 자신에게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도시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의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의 발언은 하루아침에 전 세계 경제를 들썩이게 할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불러올 파장을 예측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바람 앞의 촛불이 쉴 새 없이 흔들리듯, 누군가의 선택은 다른 어떤 이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배울수록, 많이 가질수록,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더욱 명심하며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격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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