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사유하고 고민해야 하는 까닭

by 정 호
두려움은
우리의 행동을 가장 최전선에서 제지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두려움을 품고 살아간다. 돈이 없어 이사를 수도 없이 다녀야만 했던 어린 시절, 가난이 주는 두려움을 너무 이른 나이에 알게 되었다. 기름 땔 돈이 없어 한 겨울에 패딩 점퍼를 입고 입김이 나오는 방에서 잠이 들거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가로등조차 없어 어두운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집까지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일은 차라리 낭만적이라고 할 만큼, 가난이 주는 고통은 치를 떨 만큼의 두려움을 몸과 마음에 각인시켰다. 어느 겨울, 냉골 같은 화장실 타일 바닥 위에 얼어 죽은 쥐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이 여전히 생생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행운을 타고난 대한의 건아가 집에서 동사할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다소 비현실적인 일 같지만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가난은 현실의 삶을 위협함과 동시에 몸과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두려움을 가슴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둔 채 살아간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숨기면 숨길수록 더욱 강대해져 두려움을 품은 주체를 잠식해 들어간다. 이겨내지 못하면 잡아먹히게 되는 셈이다. 가난을 두려워하면서도 여전히 가난하게 사는 방식으로 삶을 연명하거나 누구보다 인정에 대한 욕구가 큰 사람이면서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것을 하찮고 천한 것으로 여기는 삶의 형태, 이런 식의 삶은 결코 응원해주고 싶거나 긍정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자세는 아니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게 되거나 만족할 만큼의 성취를 일궈내지 못할 것 같은 세속적인 두려움과 마주 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는 주로 나만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여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춘 사람들이 품게 되는 두려움이다. 나의 기준이 없는 탓에 다수가 말하는 말을 정답이라 착각하여 분위기와 여론에 취해 휩쓸리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공들여 쌓은 모래성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듯, 남의 말에 휩쓸리는 인생은 무엇을 공들여 쌓더라도 그 끝은 결국 소멸과 공허만이 빈자리에 우두커니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


폭력, 가난, 집착, 차별, 학대와 같이 어떤 트라우마에서 비롯되는 두려움도 있다. 이는 체험을 통해 각인된 두려움이다. 이런 종류의 두려움들은 몸과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메커니즘이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폭행을 많이 당한 사람이 누군가가 손을 들기만 해도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 안거나 가난하게 자란 사람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습관적으로 값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거나 하는 행위들이 그렇다. 이는 몸으로 체화된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 없이 스스로 끊어내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그런가 하면 미숙함을 들키거나, 거절을 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방식처럼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존재의 부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이를 먹어 신체 기능이 퇴화하거나, 죽음이 그리 먼 일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처럼 존재의 소멸에 관한 두려움은 차마 외면하기 힘들 만큼 거대하고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이쯤 되면 이런 궁금증이 솟아오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대체 이토록 수많은 두려움을 마주하며 우리는 어떻게 삶을 지탱해 낼 수 있는 것인가. 써놓고 보니 매우 다급한 일이면서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문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 말은 곧 우리가 앞에서 열거한 두려움들, 그리고 열거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두려움들이 생각보다 별 일이 아니거나 이미 나름의 방식으로 두려움을 적절하게 다뤄내며 무탈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뜻과 같다.


부정적인 감정에 대처하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두려움 역시 비슷한 대처법으로 동일하게 다뤄낼 수 있으리라. 우리는 두려움을 무시, 외면, 극복, 수용, 압도와 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있다.


첫 번째 "무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음이 단단하고 담이 큰 탓에 애초에 두려움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두렵기는 하지만 그것이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조금 수월하게 두려움의 파도를 넘어가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대처 방식이다. 이는 두려움의 종류나 크기, 그리고 사람이 천성적으로 타고나는 담력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대처법이다. 천성적으로 담이 큰 사람들은 커다란 두려움조차 무시의 방법으로 다스릴 수 있겠으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이 방법은 사용하고 싶어도 쉽사리 사용하기 어려운 카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본인의 마음 그릇의 크기를 알아채는 것이 우선이다. 자신이 담아낼 수 있을 정도의 두려움이라면 무시의 방법을 사용하여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것이 더 큰 두려움을 다룰 에너지를 남길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무시는 본디 태생적으로 담력이 좋은 사람이나, 담이 작다면 자신이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두려움에만 적용할 수 있는 스트레스 관리법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외면"은 쉽게 말해 회피하는 것이다. 마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눈앞에서 숨기면 사라졌다고 믿는 대상 영속성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아기처럼 유아적인 방식으로 두려움을 애써 피하려는 태도다. "무시"는 개인적 담력에 기대거나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잊어버리려 노력하여 문제 상황이 더 이상 문제 상황으로 남지 않게 치환시켜 스트레스를 제거하고 일상의 평온함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라는 것과 대조적으로 "외면"은 문제 상황이 여전히 문제 상황으로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면은 그 대상이 언제든 다시 시야로 들어오는 즉시 다시금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는 엄격히 말하자면 두려움에 대한 대처 전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의외로 이런 방식으로 두려움과 마주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세 번째 "극복"은 두려움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방식이다. 가난이 두렵다면 돈을 벌고 폭력이 두렵다면 운동을 하며 사랑이 두려워도 끊임없이 사랑하는 식이다. 어찌 보면 두려움에 대처하는 가장 긍정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가장 많은 에너지(시간, 노력, 끈기 등)가 요구된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외면이나 무시의 방식을 선택하곤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바로 이 "극복"을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외면이나 무시는 임시방편이기 때문이다. 임시방편은 언제든 그 문제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소공포증을 품고 있는 사람과 고소공포증을 극복해낸 사람이 향후 살아갈 인생을 생각해 본다면 그 둘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벌어지게 될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극복은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네 번째 "수용"은 받아들임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일정 수준 체념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이 포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평온한 마음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용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는 단박에 수행이 가능한 수준의 대처법은 아니다. 수용은 무시와 외면, 극복을 위한 투쟁 등 여러 방법 끝에 도달하게 되는 일종의 해탈의 경지와 같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어찌할 방도가 없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수용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는 노력의 영역이 아니다. 모든 것의 극단값에 도달해본 사람만이 도착하게 되는 종착역인 셈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압도"다. 두려움을 압도했으면 좋겠으나 그것은 극복과 같은 의미이기에 여기에서는 정 반대의 의미를 뜻한다. 바로 두려움에 압도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외면과 마찬가지로 대처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압도란 두려움에 짓눌려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두려움에 압도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압도와 수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무시와 외면, 극복을 위한 투쟁의 시간을 거친 사람이 끝내 도달하는 곳이 바로 수용이거나 압도이기 때문이다.


무시, 외면, 극복, 수용, 압도, 어떤 것이 불안에 대처하는 좋은 방식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작은 것은 무시하되 가능하면 극복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은 수용하며 외면과 압도만큼은 피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특정한 방식으로만 불안과 마주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때에 따라 적절한 대처법을 사용할 수 있는 혜안을 기르는 것이 물론 필요한 일이겠지만 혜안이라는 것이 어찌 그리 쉽게 생기는 것이던가. 늘 사유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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