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무새가 되지 않으려면
인생의 황금기, 살면서 가장 즐거웠던 시절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 보라는 질문에 고민이 없었던 철부지 유년 시절을 꼽는 사람도 있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추억을 만들던 청소년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의외로 최악의 시절이었을 것만 같은 군 복무 기간을 인생 최고의 경험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슬램덩크의 강백호라도 빙의한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하는 멋진 사람들도 있다.
나에게는 대학시절이 그런 순간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대부분의 친구들과 비슷하게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공부 이외의 그 어떤 선택지도 바라보지 않고 살았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그 목표의 근원은 불안이었다. 궁핍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불안의 텃밭에서 피어난 간절함은 그저 묵묵히 열심히 하는 것 이상의 치열함을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그런 긴장감을 품은 채 5년을 살아냈으니, 대학에 합격한 이후의 해방감을 어찌 말과 글로 풀어낼 수 있으랴.
해방의 기쁨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스물의 청년은 가물었던 몸과 마음을 급하게 적시느라 기쁨을 주는 것들에게 너무도 쉽게 마음을 내주었다. 쉽게 사람을 만나고, 쉽게 깊은 관계라 착각하고, 쉽게 마음을 열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더 이상 기쁨을 주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빚을 독촉하는 사채업자라도 된 듯 너무도 쉽고 거칠게 잠시 빌려주었던 마음을 거두어들였다. 급하게 소용돌이치던 마음과 맞물려 있기라도 하다는 듯, 겉으로 맺어지는 관계들 역시 늘 높은 텐션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것이 진실한 것이며 영원할 것인 줄로만 알았다.
거의 유치원생과 비슷할 정도로 자신의 앞날에 대해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무렵, 친척으로부터 하나의 제의를 받게 된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자녀들의 영어 공부를 위해 필리핀으로 아이 둘을 보내고 싶은데 부모는 둘 다 직장 때문에 함께 갈 수 없으니 조카였던 내가 1년간 휴학을 하고 보호자로서 함께 해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 모든 비용은 본인들이 부담할 것이며 원한다면 나의 영어공부를 위한 프로그램까지도 알아봐 주겠다는 제안. 당시 일정이 급하게 결정되어 3일 안에 답을 내어주어야 본인들이 다른 계획을 생각할 수 있다며 나에게 3일의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영어가 콤플렉스로 남아있는 나에게 당시의 제안은 정말로 솔깃했다. 공짜로 1년간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 외국에 그토록 오랜 기간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퇴직을 하지 않는 이상 다시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로 구미가 당겼다. 사촌 동생들도 정해진 커리큘럼을 소화하느라 실질적으로 늦은 오후 이후에나 내 보살핌이 필요할 것이고 그 이외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배움, 나의 경험을 위해 사용될 수 있었다.
3일이라는 시간의 제약은 뇌가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을 분쇄시켰다. 급한 마음에 당시 친하게 지내던 몇몇의 친구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정보 수집은 끝이 나 버렸고 결국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는 것으로 결론 내고야 말았다. 누군가가 들었을 때에 너무나 우습게 들릴지도 모를 이야기지만 친척의 제안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는 "너무너무 좋은 대학 동기들과 헤어지기 싫어서"라는 몹시도 감성적이고 유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멍청한 놈.." 세월이 지나 스스로를 여러 번 탓했다. 그때 일 년만 나갔다 왔더라도 내 영어 실력이 얼마나 늘었을까, 그렇게 평생을 따라다닐 콤플렉스를 하나 지워내는 일은 이후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을까, 혹여나 영어 실력이 늘지 않았더라도 외국에서 일 년을 살다온 경험은 또 얼마나 큰 자산이 되었을까. 그것은 글을 쓰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은 양분이 되어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너무도 작아 선택인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선택이 있는가 하면, 몇 달 혹은 몇 년의 고민 끝에 어렵고 마지못해 결정하게 되는 커다란 선택도 있다. 어떤 선택이 되었건 당시에는 최선이라는 판단 하에 이루어진 결정이었을 테다. 그런 선택들이 모여 현재의 나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은 지금을 잘 살아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지나온 삶에 몇몇 후회스러운 선택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잠시 눈을 질끈 감고 금세 털어낼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가 지옥 같다면 후회스러운 선택은 영원히 꺼지지 않은 채 가슴속에서 타오를 것이 자명하다. 과거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결정에 대한 감정은 바꿔낼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을 잘 살아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