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냥 그런 거지
아들: 아빠 오늘 일요일이야?
아빠: 응 일요일이야
아들: 그럼 내일 어린이집 가?
아빠: 어린이집 가야지~
아들: 어린이집 가기 싫어
아빠: 왜? 어린이집 가면 무슨 힘든 일 있어?
아들: 아니
아빠: 그럼 왜 가기 싫어? 가기 싫은 이유가 뭐야?
아들: (잠시 생각하더니) 그냥 원래 그런 거야
어린이집에 다니던 1년 동안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한 번도 한적 없던 아들의 입에서 갑작스레 가기 싫다는 말이 나오자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혹여나 친구들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마음에 상처가 생긴 것은 아닌지, 본인이 견뎌내기 힘든 어떤 사건과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한번 싫다는 말을 뱉고 나면 기어코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일종의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집을 부리는 아이의 모습을 알기에 어린이집이 싫다며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아이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의 속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장단점 놀이를 하자며 어린이집에 갔을 때와 가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랑 선생님들이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맛있는 밥도 먹고 좋아하는 축구랑 수영도 배우고 재미있지 않아?
아들: 응 좋아
아빠: 모든 일에는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어 어린이집에 갔을 때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은 뭐가 있을까? 먼저 좋은 일은 뭐야?
아들: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선생님도 볼 수 있어
아빠: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며) 그렇구나, 그럼 어린이집에 갔을 때 안 좋은 일은 뭐야?
아들: 엄마 아빠랑 같이 놀 수가 없어
아빠: (약간의 감동과 애잔함을 느끼며) 그렇구나, 어린이집에 가면 엄마 아빠랑 놀 수 없어서 아쉬웠구나
아들: 응
아빠: 그럼 어린이집에 안 갔을 때를 생각해 볼까? 어린이집에 안 갔을 때 좋은 점은 뭐야?
아들: (씩 웃으며) 엄마 아빠랑 신나게 놀 수 있어.
아빠: 그렇구나 아빠도 아들이랑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어린이집에 안 갔을 때 안 좋은 점은 뭐가 있을까?
아들: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하더니) 없. 어.
아빠: 응...?(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원래 그런 거야'라는 대답과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을 때 생기는 안 좋은 일은 없다는 두 대답 사이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내일모레 40을 앞둔 나조차도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같은 대답을 내놓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아이 앞에서 동의의 끄덕임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그래 출근하는 것은 싫지, 그것은 그냥 원래 그런 것이지... 출근을 안 했을 때 생기는 안 좋은 일 역시 이렇다 할 만큼 특별할 것은 없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아이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됐다. 물론 가기 싫다고 할 때마다 아이의 뜻에 따라 "그래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이의 말 하나하나를 과도하게 긴장하며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가기 싫다는 아이의 마음을 설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은 어찌 되었건 부모가 할 일이며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일이리라.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아이의 말대로 의무감에 수행해야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그냥 원래 하기 싫은 법이니까.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커서 일상을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건과 생각을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하니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시간과 너의 마음이 허락할 때까지 때로는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서, 또 때로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너와 나의 삶을 포개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