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이면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단독 저서가 나온다. 공동저서였던 첫 번째 책을 출판할 때는 내가 쓴 글만 고쳐 쓰면 됐는데, 아무래도 단독 저서에 비해 글의 양이 적어 맞춤법 사이트를 통해 교정하고 글의 내용을 수정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혼자서 책 전체 분량을 점검하고 교정 교열을 살피며 그때마다 틀어지는 책의 내지 디자인과 쪽수를 수정하느라 세 번째 살필 때쯤은 거의 실성한 듯한 심정으로 책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퇴고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더니 이 지난한 과정을 이겨내고 완벽히 만족스러운 상태로 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맞춤법 검사기를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탈자는 다시 읽을 때마다 신기하게도 계속 튀어나오고, 전에 읽을 때는 괜찮아 보였던 문장이 다시 읽을 때면 어찌 그리 옹색하고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던지 싹 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결국 책을 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볼 수밖에 없는 작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면서 힘들기는 했지만 잘못된 문장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해서 좋았다. 너무 반복적인 문장 습관이라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는 느낌이었다. 띄어 쓰기나 맞춤법이 틀리는 정도는 굳이 기록해 둘 의미가 없을 정도로 흔한 실수에 불과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비속어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흔해 빠진"이라는 말이 비속어라는 사실에 놀랐는데 표준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비속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어서 그랬을까? 알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는 비속어가 대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갈길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역전앞, 동해바다처럼 같은 의미가 중복되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이 새삼 바보같이 느껴졌다. 처갓집, 약숫물, 생일날처럼 한눈에 봐도 의미가 중복되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단어는 실수하는 일이 없었지만 의외로 자주 실수하는 단어의 조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거의 대부분"이다.거의와 대부분은 한눈에 봐도 같은 의미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동안 글을 쓰며 왜 인식하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이라는 표현을 그토록 자주 썼을까. 습관의 무서움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의"를 남발하는 것 역시 이번에 발견한 안 좋은 문장 습관이었다. 스스로의, 나의, 대부분의, 나의 살던 고향,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우리 모두의 이름을... 이런 문장들이 다 틀린 문장이라고 하니,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글쓰기를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느낌이다.
"에"를 반복하는 것 역시 안 좋은 습관이다. ~을 할 때에는, 갈 때에는, 올 때에는 처럼 굳이 "에"를 써넣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문장에 "에"를 집어넣어 군더더기를 만들 필요가 없다.
"에"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군더더기로서 자주 오용되는 조사가 있다. 바로 "을"과 "를"이 그것이다. 산책을 하기 위해, 말을 했다, 지원을 했다, 입학을 하더라도, 쇼핑을 했다, 목욕을 하는, 운전을 하다, 봉합을 하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 권유를 했다, 물놀이를 했다, 모두 거추장스러운 표현이다. 을과 를을 과감히 삭제해도 좋다.
을, 를과 맞먹는 빈도로 자주 남용되는 표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들"이다. 사람들, 여러 조건들, 우리들, 자동차들, 미국인들처럼 불필요하게 "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역시 과감한 삭제가 필요하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삶에 있어서, 습관에 있어서, 그것에 대하여, 우리에 대하여, "~에 있어서", "~에 대하여" 같은 번역투의 말투 역시 지양해야 할 글쓰기 습관이다.
"것이다." 역시 남발할 때가 많은데 ~하다로 수정하는 편이 깔끔하다. 예를 들어 "당연한 것이다"보다는 "당연하다"가 좋고 "알게 된 것이다" 보다는 "알게 되었다"가 좋다.
"우당탕탕"은 틀렸고 "우당탕"이 맞으며 "꺄르르르" 말고 "까르르"가 맞다. "~에 처했을 때"는 틀렸고 "~에 부닥쳤을 때"라고 표현해야 맞다는 맞춤법 규정들은 그 미세한 한 글자의 추가와 삭제 사이에도 맞고 틀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재미를 느끼게 했다.
맞춤법 검사기라는 툴을 이용해 맞춤법을 교정했지만 그럼에도 100% 올바르게 수정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수정된 내용이 문맥상 어색하고 흐름에 맞지 않아 기존에 사용한 단어를 그대로 써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타강사를 최고 인기 강사로, 톤온톤을 동계 배색이라고 수정하라는 문구에서는 북한군의 지령인가? 싶어 웃음이 났다. 아웃사이더(가수)를 국외자로 수정하라는 내용에서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원데이 클래스를 하루짜리 강좌로, 쓰리 잡을 세 겹 벌이로 수정하라는 내용에서는 이게 맞나 잠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게 되었다. 외래어를 죄다 우리말로 번역하려다 보니 이런 웃긴 일도 많다.
시에 있어서만 시적 허용이 용인되는 것은 아닐 테다. 수필이나 잡문을 쓸 때도 정말 필요한 상황이거나 글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문법에 맞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허용이 필요하다. 다만 알아두고 선택적으로 차용하는 것과 알지 못한 채 남용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테니 알아두어 나쁠 것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