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그러니까 2022년 12월 31일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무렵, 바다 멀리 스러져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해 소원을 빌던 순간이 떠오른다. "지금 기획 중인 책들이 모두 출판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랬다, 올해까지 꼬박 4년간 브런치에 써온 글을 모아 올해는 꼭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담아 난생처음 해넘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더랬다.
작년 여름, 출판사 50여 곳에 투고를 해봤지만 단 한 곳에서도 긍정적인 연락을 받지 못한 채 쓰디쓴 거절의 이메일만 며칠 동안 확인하며 기획 출판의 벽을 실감했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토록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찌 되었건 일단 한번 품게 된 뜨거운 마음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출판을 하고 싶다는 다급한 마음을 조금은 진정시키기 위해, 혹은 그것이 일종의 허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증거를 붙잡기 위해, 기획 출판보다 조금은 수월하게 책을 낼 수 있는 공동 출판의 문을 두드려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때마침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는 작가들의 책 쓰기 수업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알게 되었다. 마침 생각하고 있던 주제였던 터라 망설임 없이 두 곳에 잠시 발을 담그고 나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위해 그곳에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책 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글을 썼다.
한 곳은 한 달짜리 단기 코스였고 다른 한 곳은 1년짜리 장기 프로젝트였다. 둘 다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먼저 알게 된 곳은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수업을 듣고 다음에 만나기 전까지 매주 다른 주제로 글을 한편씩 쓰며 원고를 모으고 퇴고를 하는 식으로 흘러갔다.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 아니었던 탓에 시간과 비용적인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한 달에 한 번,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은 마치 여행을 떠나는 듯 나에게 즐거운 마음을 선물해 주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올해 내 이름이 새겨진 세 번째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작년 12월 즈음, 일 년의 책 쓰기 과정을 진행하고 있던 와중에 한 달 만에 책을 만들어준다는 또 다른 작가의 책 쓰기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이미 일 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석 달 정도 지났을 때쯤이었다. 1년의 과정이지만 일주일에 한편이라는, 과제 제출 기한이 조금은 느슨해서 그나마 여유가 있었던 것과 달리 한 달짜리 프로젝트는 짧은 기간만큼 압축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2주간 매일 글쓰기를 진행하고 첨삭과 퇴고의 과정을 거쳐 두 달 안에 책을 받아볼 수 있다는 커리큘럼은 꽤나 힘에 부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단기간에 출간의 맛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두 개의 과정을 모두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세상에 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왠지 조금은 비켜나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공동 저자라는 방식으로 내 인생 첫 번째 책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에는 그저 신기한 마음에 기쁨이 찾아왔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일궈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저자가 되는 지름길이긴 하지만 공동저서를 두고 내가 책을 낸 작가라고 말하는 것이 영 찝찝했다.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이 그저 다음 세상으로 내디딜 한 발이면 충분하다는 어느 작가의 말에 힘입어 작가라는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기 위해 공동 저자가 되었지만 애초에 생각했던 것만큼 커다란 뿌듯함을 느끼거나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기획출판으로 다시 한번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작년에 출판사 50여 곳에서 퇴짜를 맞았던 경험 때문인지 특별할 것 없는 내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해주겠다는 출판사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여전히 투고에 앞서 나를 옭아맸다. 사실 투고를 했다가 거절당하는 것이 두렵다기보다 투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과정에 자신이 없었다. 초고는 쓰레기라는 헤밍웨이의 말은 끊임없이 퇴고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었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콘셉트를 잡고 목차를 짜고 그에 맞춰 글의 순서를 배열해야 하는 과정 역시 힘에 부쳤다. 말 그대로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만 앞섰던 셈이다. 그렇게 급한 마음과 욕심에 첫 책은 기획출판 말고 자가출판 사이트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공동저자로서 책을 한 권 받아본 뒤의 느낌은 마치 1500m 달리기를 뛰고 난 뒤 찾아오는 타는듯한 목마름을 미지근한 물 반컵으로 애매하게 달랜 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자가출판 사이트를 이용해 오롯이 내 이름이 새겨진 단독 저서도 한 권 출판해 보았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혼자서 출고한 책이어서 그런지 출판한 이후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엉성한 구조, 문맥에 맞지 않는 문장, 비루하고 군더더기가 많이 붙어 있어 정돈되지 못한 표현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일 년짜리 프로젝트가 끝나 세 번째 책을 받아보게 되었고 이 역시 얼마간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안겨주었으나 여전히 자신 있게 나를 작가라고 소개할 수 있을 만큼의 자신감을 부여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내 이름으로 출판된 네 번째 책이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떠오른 감상과 감정을 정리한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했는데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무려 두 곳의 출판사에서 출간을 원한다는 답신이 왔다. 어느 출판사를 선택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지만 며칠이라도 먼저 알아봐 줘 그간의 긴 목마름을 해갈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먼저 연락온 출판사와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단독 출판 2권, 공동 출판 2권으로 몇 년 동안 꿈꿔왔던 작가라는 꿈에 드디어 조금은 다가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갈급함을 조금은 내려놓고 더 좋은 글을 쓰는 데 열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4년 동안 양적인 글쓰기에 몰두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숙고하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질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2023년의 12월에 또 한 번 새로운 꿈을 그릴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