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부르지 마

슬프냐, 나도 슬프다

by 정 호
아빠: 원 투 쓰리 넌 나를 떠났지만~

아들: 왜 떠났대?

아빠: 응? 그러게 왜 떠났을까?

아들: 그냥 노래야?

아빠: 어 그냥 노래야

아들: 노래 다시 불러봐 아빠

아빠: 원 투 쓰리 넌 나를 떠났지만~

아들: 그 노래 부르지 마 아빠

아빠: 왜?

아들: 슬퍼


짧은 노래 가사 한마디에도 일일이 반응하는 아이가 신기하다. 멜로디가 슬펐을까 가사가 슬펐을까. 슬프니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아이의 말에 잠시 흥얼거림을 멈춘다. 별생각 없이 그저 입에 익어 흥얼대던 노래를 듣고 슬픔의 감정을 느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떠남이라는 단어를 듣고 아이의 마음에 어떤 일렁임이 있었을까. 한 번도 이별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아이가 어찌 이별과 떠남의 정서를 상상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기에 그것이 더욱 크게 다가왔던 것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린이집에 첫발을 내딛던 작년 3월이 생각난다. 세 돌까지 집에서 가족과 지내다 처음 기관에 발을 들이던 그날 이후 아이는 일 년 동안 아침마다 울었다고 한다. 낯선 환경에 적응이 힘들어서 이렇게 아침마다 눈물과 함께 어린이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많다고 걱정하지 말라던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일 년 내내 우는 아이를 맞이하며 적잖이 당황스러웠으리라.


그렇게 일 년을 눈물바람으로 어린이집에 다니더니 이제는 제법 의젓해진 모양인지 고래고래 울어 젖히는 대신 아침마다 할머니에게 휴지를 조금만 달라고 말하더란다. 이유인 즉 유치원 버스를 타면 눈물이 나오니 눈물 좀 닦게 휴지를 조금만 달라고 한다는데 그렇게 받아 든 휴지 몇 장으로 눈물을 톡톡 찍어 닦아내고는 유치원 가방에 집어넣는 모습이 대견하다.


아이에게 떠남과 헤어짐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며 부모와 육체적으로 분리되는 상황일까. 주말에 같이 놀자고 약속해 놓고 일이 있다고 나가는 아빠를 바라봐야만 하는 상황일까. 무엇이 되었건 그것은 분명 아이가 겪고 있을 헤어짐의 경험일 테다.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는 별일 아닌 것들이 아이의 세계에서는 경천동지 할 정도로 큰일인 때가 많다.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떠남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슬픔의 정서를 품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모로서 애잔하고 안쓰럽다는 마음이 들다가 불현듯 기쁘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슬프게 살아온 날보다 기쁘게 살아온 날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아이에게 이따금씩 느낄 슬픔의 정서는 차라리 축복이다. 고질적, 만성적 슬픔으로 삶이 휘감겨 있지 않은 상태에서 겪는 작은 슬픔은 삶을 다채롭게 채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덜 무겁다. 작은 슬픔과 함께 조금씩 자라날 아이의 모습이 기대된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슬픔도 시간이 흐르면 보물이 되기도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