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주사가 무서웠는데 꾹 참았어

아이의 최선을 헤아려줄 필요가 있다

by 정 호
아빠: 그렇게 토끼는 먹고 싶은 당근을 눈앞에 두고도 먹지 않고 꾹 참았답니다.

아들: 나도 오늘 주사가 무서웠는데 꾹 참았어


아이는 장염 의심 증세로 어제오늘 이틀간 집 앞 소아과에서 수액을 맞다. 37도에서 38도로, 그리고 기어코 39도가 넘어가며 열이 해열제로 잡히지 않자 아내와 나는 부랴부랴 소아과로 달려갔다. 가까운 곳에 소아과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주말이라 천만다행이라는 말을 하며 아내와 나는 병원에 입원을 하진 않았지만 입원을 한 것 같은 기분으로 주말 이틀을 보냈다.


장염이 의심되며 여러 바이러스도 유행이라 입원을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하루만 더 지켜보기로 하며 아내와 나는 오늘 밤 아이의 열이 가시기를 기도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다행히 수액의 효과가 있었던지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열이 내리기 시작했고 열이 내리자 입맛이 조금은 돌아왔는지 거부하던 음식을 조금씩 입에 대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좋아졌는지 아이는 다시 활기가 돌아왔고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드게임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던 와중, 책의 등장인물이 꾹 참았다는 문장이 나오자 아이는 자신이 어제오늘 겪었던 경험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자신도 무섭고 아팠지만 꾹 참았다는 말, 동화책을 읽으면서 유독 "참았다"는 단어가 아이의 가슴에 꽂혔던 이유는 그 단어에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나도 아프고 무서웠는데 참았다는 말을 두세 번 연거푸 꺼내는 아이를 바라보며 어제오늘 아이가 자신의 손등에 바늘이 꽂힐 때 외치던 절규가 떠오른다.


주사 맞아야 돼요?

왜요? 나 이제 배 안 아파요.

안 아프게 주사 놔주세요.

주사 맞기 싫어요.

빨리 해주세요. 선생님.

엄마, 아빠 저쪽으로 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울고불고 고함을 치는 아이의 모습은 절규 그 자체였다. 주사 한 대 맞는 일이 뭐 별거겠느냐는 어른의 생각과 달리 아이에게 주삿바늘은 일생일대의 공포였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효를 내지를 수 없었으리라. 공포와 마주하며 아이는 그 찰나의 순간에 여러 감정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 두려움이 진짜인지(주사 맞아야 돼요?), 이 두려움을 외면하기 위한 거짓말(나 이제 배 안 아파요), 회피하고 싶은 마음(주사 맞기 싫어요), 권위에의 호소(빨리 해주세요 선생님), 조력자의 도움 요청(엄마, 아빠 주사실이 아닌 곳으로 가고 싶어), 가장 안전한 곳으로 피신(집에 가고 싶어)


막상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은 뒤에는 유튜브를 보며 얌전히 앉아있었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 찰나의 순간은 아이에게도, 그런 아이를 바라봐야 하는 부모에게도 끔찍한 순간으로 각인된다. 아이가 울며불며 부모에게 매달려 절규하는 그 순간에는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그저 아이를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진정된 아이와 대화를 하며 그 순간 아이도 최선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