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아들: (꾸벅꾸벅 존다)
엄마: 아들 졸려? 오늘 피곤했나 보다 양치하고 일찍 자자
아들: 안 돼. 아빠랑 레고 조립하기로 했는데
엄마: 내일 해도 돼~
아들: (눈물이 쪼르륵 흐른다)
엄마: 왜 울어 아들. 괜찮아 내일 하면 되잖아~
아들: 아니야
아빠: 오늘 아빠랑 조립하기로 약속했는데 약속한 걸 스스로 못 지키게 된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아들: (끄덕끄덕)
아빠: 괜찮아 약속은 중요하지만 엄마 아빠는 지금처럼 아들이 약속 못 지키는 상황도 다 이해해. 그러니까 울지 말고 내일 하자. 내일 조립하는 걸로 우리 다시 약속하면 약속을 못 지키는 게 아니잖아.
엄마: 그래 너무 졸리면 자야지. 어릴 때는 잠자는 것도 중요한 일이야.
아들: 응 알았어
레고를 가지고 놀고 싶은데 못 놀게 해서 우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하고 싶은 것을 못할 때 흘리던 눈물의 양상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는 보통 소리를 지른다거나 짜증 섞인 말투로 자신의 불만을 표출했다면 이번에는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고 눈물만 또르륵 흘렸다는 점, 아니라는 말도 "아니야~~~!!"가 아니라 "아니야..."와 같은 느낌으로 발화했다는 점, 졸린 눈을 자꾸만 비비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아, 아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짜증이 아니라 죄책감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챘다.
괜찮다고, 약속한 것을 못 지킬 때도 있는 법이라고, 약속한 대상과 새롭게 약속하면 되는 일이라고, 지금 그 나이에는 졸릴 때 자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그렇게 아이를 안심시키자 아이는 수긍을 한 모양인지 침대로 가 그대로 스르륵 잠이 든다.
부모의 말이 세상에 진리였던 탓에 아이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경전처럼 떠받들었던 모양이다. 복잡한 세상사에 융통성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아이가 알 리 만무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적절하게 원리원칙을 변주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여섯 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세상 모든 일이 모순되고 모든 말이 모순되며 인간이 모순 그 자체라는 것을, 하나는 하나고 둘은 둘인 줄만 알고 있는 이 아이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손을 잡아주고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맞추며, 부모에 대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으로 아이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한 밑천을 다져주고 있노라고 믿는 부모이지만, 그런 부모 역시 가끔은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말이 사실인지 헷갈려 늘 혼란과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아이 역시 언젠가 깨닫는 날이 올 테지. 그리고 그즈음이면 우리는 더 이상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해줄 말이 없어질 테지. 그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이의 시간을 서둘러보다가 한편으로는 그때까지 좋은 것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우리의 시간이 서둘러 흐르고 있음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전해주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서, 어쩌면 부모는 그 조급한 마음에 아이 앞에서 늘 분주해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