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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Aug 20. 2024

힘든 게 아니라 어려워

네가 작가다

아빠: 동생이랑 재밌게 놀았어?

아들: 아니

아빠: 동생이 말을 잘 안 들었어?

아들: 응

아빠: 어떻게 안 들었는데?

아들: 리모컨을 밟지 말라고 했는데 밟고, 문을 열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열었어

아빠: 그래서 동생 때문에 힘들었어?

아들: 힘든 게 아니라 어려워


출근 전 처가에 아이를 맡긴다. 맞벌이인 탓에 염치 불고하고 아이 유치원 등원을 위해 장모님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주에는 이제 갓 돌이 지난 사촌 동생이 할머니집에 놀러 온 모양인데 아들은 유치원 등원 전에 두 살배기 어린아이와 잠시 놀다가 유치원에 가는 모양이다. 아기도 아기와 같이 노는 것은 힘에 부쳤던지 동생과 재미있게 놀았냐는 아빠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문 열지 마 다쳐!

리모컨 밟으면 안 돼!

그거 주워 먹으면 안 돼!

혼자서 뛰어가면 넘어져!


아들은 쉴 새 없이 동생에게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설명했지만 갓 돌 지난 아이가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실행할리 만무하다. 그렇게 아들은 어린 동생과 함께 지내며 오빠로서의 역할을 일부 자각한 듯 보인다. 고되고 힘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아이는 힘들었느냐는 아빠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힘든 게 아니라 어려웠다고 단어를 새롭게 골라낸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 그 일을 포기하고 싶어 지니 힘들다는 말 대신 어렵다는 말로 어휘를 고쳐 써보자는 어느 강사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들 때는 포기하고 싶어 지지만 어려울 때는 방법을 찾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어휘 차이에 따라 사고의 변동을 계산하여 힘들지 않고 어렵다고 말했을 리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아이는 부지불식간에 두 살배기 어린 아기와 소통하는 일이 힘듦보다는 어려움에 가까운 일이라고 느꼈던 것이었을까. 굳이 단어를 골라서 아빠의 말을 다시 정정하는 아이를 모며 뭇 깜짝 놀란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할 조약돌을 해변을 거닐며 고르고 고르듯 단어를 신중히 선별하는 것이 작가의 일일진대 아이 앞에서 문득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더 치밀하게 구분하려는 노력은 과연 쓸모 있는 노력일까. 아이와 나누는 대화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다. 나라는 존재를 가장 천진하게 바꾸고 때때로 이렇듯 큰 감동과 고양감을 누리도록 하니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와 누워 눈떠서 잠드는 순간까지 대화를 하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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