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전 처가에 아이를 맡긴다. 맞벌이인 탓에 염치 불고하고 아이 유치원 등원을 위해 장모님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주에는 이제 갓 돌이 지난 사촌 동생이 할머니집에 놀러 온 모양인데 아들은 유치원 등원 전에 두 살배기 어린아이와 잠시 놀다가 유치원에 가는 모양이다. 아기도 아기와 같이 노는 것은 힘에 부쳤던지 동생과 재미있게 놀았냐는 아빠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문 열지 마 다쳐!
리모컨 밟으면 안 돼!
그거 주워 먹으면 안 돼!
혼자서 뛰어가면 넘어져!
아들은 쉴 새 없이 동생에게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설명했지만 갓 돌 지난 아이가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실행할리 만무하다. 그렇게 아들은 어린 동생과 함께 지내며 오빠로서의 역할을 일부 자각한 듯 보인다.고되고 힘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아이는 힘들었느냐는 아빠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힘든 게 아니라 어려웠다고 단어를 새롭게 골라낸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 그 일을 포기하고 싶어 지니 힘들다는 말 대신 어렵다는 말로 어휘를 고쳐 써보자는 어느 강사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힘들 때는 포기하고 싶어 지지만 어려울 때는 방법을 찾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어휘 차이에 따라 사고의 변동을 계산하여 힘들지 않고 어렵다고 말했을 리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아이는 부지불식간에 두 살배기 어린 아기와 소통하는 일이 힘듦보다는 어려움에 가까운 일이라고 느꼈던 것이었을까. 굳이 단어를 골라서 아빠의 말을 다시 정정하는 아이를 모며 사뭇 깜짝 놀란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할 조약돌을 해변을 거닐며 고르고 고르듯 단어를 신중히 선별하는 것이 작가의 일일진대 아이 앞에서 문득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더 치밀하게 구분하려는 노력은 과연 쓸모 있는 노력일까. 아이와 나누는 대화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다. 나라는 존재를 가장 천진하게 바꾸고 때때로 이렇듯 큰 감동과 고양감을 누리도록 하니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와 누워 눈떠서 잠드는 순간까지 대화를 하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