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이란 무엇인가

두려움 속에 피는 꽃

by 정 호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태를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솔직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솔직함이 아니다. 상대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악함에 가깝다. 영화에 나오는 악당을 생각해 보자. 솔직함의 속성이 가감 없이 자신의 속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악당들은 솔직함의 결정체다. 그들은 상대가 누구이건, 자신이나 상대방의 상태가 어떻건 결코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꾸밈없이 드러낸다. 이런 악당을 두고 솔직하다는 표현으로 그들을 수식할 수 있을까.


악당들은 보통 힘이 세다. 그들에게는 영웅과 맞먹을 정도의 무력과 리더십이 있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 역시 적지 않다. 이처럼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신념을 꾸밈없이 밀고 나가기는 쉽다. 그런 상황에서는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고 남의 눈치를 볼 이유가 적기 때문이다.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일수록 솔직할 경향성이 높다. 눈치 볼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솔직해진다는 것은 남들의 눈치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뜻하고 그러한 종류의 자유로움은 무엇이 되었건 일종의 권력(자본, 외모, 명성, 지식, 학벌 등 우리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희소하고 가치롭다고 여겨지는 것)을 바탕으로 태동한다.


이런 이유로 그런 류의 솔직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식으로 스스로 인식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상대방이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선민의식으로 드러나며 상대방은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그런 류의 솔직함은 엄밀하게 말해서 솔직함이라고 볼 수 없다. 권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배경을 두고 조건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인간은 결코 믿지 않는다.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만 발현되는 솔직함은 그래서 솔직하지 못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진정한 의미의 솔직함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조건적 본성의 발현에 불과하다.


힘이 없어도, 가진 게 없어도 자신의 속을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아는 것,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때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과 불편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꺼이 그것을 감수해 가며 자신의 본질을 드러낼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조건 없는 솔직함이며 진정한 의미의 솔직함이다. 그런 솔직함 앞에서 인간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력자의 호통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고개를 조아리게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는 못한다. 독립투사의 유언과 전태일의 한마디가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들의 말이 그들의 삶을 통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부자는 나쁘고 빈자가 정의롭다는 낡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솔직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속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으면 하는 생각에 그저 또 한 번 슥슥 끄적여본다. 조건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뾰족하게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이 솔직함의 첫 번째 속성이라고 한다면 솔직함의 두 번째 속성은 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하다는 말에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다. 솔직한 악당이라는 말이 어색한 이유는 솔직함이라는 단어가 악당을 수식하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솔직함이라는 단어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은연중에 섞어 쓰고 있었다면 솔직한 악당이라는 말을 이질적으로 느낄 리 없다. 솔직한 도둑, 솔직한 사기꾼이라는 단어가 우스운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노력한들 솔직하다는 단어가 뒤따라오는 단어의 악함을 꾸미기가 도저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하다는 말에는 선함이 담겨야 한다.


조건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언제나 선함을 담고 있거나 추구해야 하는 것이 솔직함이라는 단어의 본령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규범이 되어야 옳다. 하지만 어떤가, 솔직함을 두고 우둔하다거나 이재에 느린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것은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마땅히 좇아야 할 것을 우습게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조건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언제나 선함을 추구하는 것이 비웃음을 사는 세상에서는 조건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굳이 선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것이 된다.


무엇이 맞는지 도저히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울 때가 적지 않지만 솔직함이라는 단어의 쓰임새 하나를 앞에 두고도 이토록 어지러울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느껴질 때 사람의 가치관에는 경천동지 할 만큼의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그때가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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