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30층 정도 높이의 아파트는 마천루라는 타이틀을 가져가기 어렵게 되었다. 보편화된 것은 아니지만 80층 이상의 아파트도 지어진 마당에 40층 이상은 되어야 초고층 아파트라는 타이틀을 간신히 거머쥘 수 있는 모양새다. 높은 곳에 가 닿고 싶었던 인간 욕망의 기원은 어디일까. 누군가는 성경에 기록된 바벨탑에서 그 최초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높은 곳을 향한 인간의 집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높은 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파트 분양가를 보면 층이 높아질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이 비싸다는 것은 선호도가 높은 상품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인간의 욕망이 모이는 곳이라는 것을 뜻한다. 고층이 주는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조망권, 즉 우리의 시야에 한정 지어 생각해 보자.
고층의 조망은 아름답다. 건물이 가로막지 않고 광활하게 뚫려있는 공간을 통해 하늘과 구름, 지평선과 수평선, 저 멀리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구버진 산의 자태를 바라보며 아득한 자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에 넋을 잃게 된다. 해질녘 노을이 빚어내는 붉음과 푸름의 그라데이션은 얼마나 황홀한가. 저녁이면 근처 아파트와 상가, 도심의 건물이 뿜어대는 불빛의 파노라마가 만드는 도심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 또한 고층의 매력이다. 하늘을 자유롭게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새를 수평으로 바라볼 때면 한 조각의 자유를 얻은 듯한 기분마저 든다. 이는 모두 관찰대상으로부터 높고 먼 곳에 자리 잡고 있을 때만 관찰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저층의 조망 역시 아름답다.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뭇잎, 나무 위에 앉아 지지배배 지저귀는 새들의 지저귐, 창틀에 기어 다니는 곤충의 미세한 움직임,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 단지 안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런 아이들을 웃으며 껴안아주는 어른들의 미소. 이는 모두 낮고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을 때만 관찰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고층에서 바라본 세상의 모습도, 저층에서 바라본 세상의 모습도, 각각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지만 나는 저층의 아름다움에 더 끌린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높은 것이 싫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차치하더라도 가까이에서 보이는 것들이 좋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나뭇잎이 보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살필 수 있고 생동하는 생명의 움직임을 알아챌 수 있다. 멀리서 본 풍경도 아름답지만 그런 아름다움은 경직되어 있다. 오직 가까이에서 바라볼 때만 그 작은 출렁임을 속속들이 인지할 수 있다.
크고 높은 것이 주는 아름다움은 웅장하고 장엄하여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나의 삶과 맞닿아 있기 어렵다. 작고 사소한 것들, 결코 사소하지 않지만 사소해 보이는 것들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 작은 출렁임을 인식하고 그것들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올 때, 그런 아름다움은 나의 세상을 바꾼다. 아름다운 것은 많지만 어떤 아름다움이 나와 더 공명하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는 자의 부단한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