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는 사람, 눈치 안 보는 사람

전문성, 사랑, 무지로부터 탈피

by 정 호

어느 주말 오후,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 집 앞 도서관에 갔다. 아직 회원가입을 하지 않은 터라 좌석 발급을 할 수 없어 열람실 한쪽 귀퉁이에 주렁주렁 노트북과 책을 펼치며 자리에 앉는다. 한창 집중력을 발휘하며 몰입의 경지에 빠져들려 할 때쯤 누군가가 옆에서 좌석번호가 찍힌 종이를 슬쩍 건네 보이며 본인의 자리라는 것을 조심스레 나에게 알린다. 민망한 마음에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서둘러 짐을 챙겨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옮겨간 자리에서도 서서히 집중이 되려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또 다른 어떤 이의 방문과 함께 자리를 옮겨야 한다. 그렇게 자리를 두세 번 옮기다 보니 누군가 내 뒤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다음날 도서관 회원가입을 하고 좌석 번호가 찍힌 표를 발급받아 지정된 좌석에 앉으니 신기하게도 뒤에 누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혀 신경 쓰이지다. 도서관 열람실 좌석 발급증 하나가 이토록 사람 신경을 예민하게 혹은 둔감하게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며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내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것, 언제든 그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쉽게 지워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뺏기지 않기 위해, 밀려나지 않기 위해, 존재의 영속성을 보존하기 위해 그토록 예민하게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었을까.


도서관 열람실 좌석표를 발급받고 내 마음이 안정되었던 것처럼 인생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열람실 좌석표를 주머니에 넣고 있는 한, 누가 와도 그 자리를 빼앗아 갈 수 없다. 그것은 확신이다. 강한 확신, 그 확신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인간으로 하여금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으로 직업적 전문성을 떠올려 본다. 직업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인간의 존엄을 형성하고 지탱시키는 가장 큰 뿌리이자 줄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생존을 가능케 한다는 뜻이다. 생존과 관련된 영역에서 누구에게도 대체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강한 자기 확신과 자신감을 배양한다. 그래서 자기 밥벌이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밥벌이의 영역에서 전문성까지 갖추게 된다면 자존감은 자연스레 올라 수밖에 없다.


나를 향한 타인의 믿음과 신뢰 역시 인간에게 강한 확신을 심어주는 강력한 힘이다. 무조건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사람,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 따듯한 눈길로 바라봐주는 사람, 그 어떤 조건의 결합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에게 베푸는 사람에게 인간은 든든한 감사함을 느낀다. 그런 사람이 내 곁에 하나 둘 모여들 때, 그런 사람들 안에서 숨 쉬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와 기운이 난다.


안정을 위한 강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무지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똑똑해져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들여다보고 공감하려 애써야 한다는 의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다가는 한입에 잡아먹히게 될 뿐이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해야 한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야 한다. 알지 못하는 것 앞에서 인간은 당당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면서 말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모르는 것에 대해 알고자 하려는 태도가 몸에 익을 때라야 무지한 상태의 두리번거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지의 두리번거림은 나약하다. 모르면서 말하려는 가벼움이 경박하고, 몰라서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래서 무지의 두리번거림은 나약하게 비친다.


알기 위한 두리번거림은 단단해지기 위한 과정이다. 이는 공감을 낳고 공감은 이해를 불러온다. 그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확신이 생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무한하다는 무지에 대한 확신. 역설적이게도 앎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확신은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으며 무지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일수록 무너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것이 더 강한 확신이며 어느 때 더 안정적일 수 있겠는가.


두리번거리지 않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두리번거림의 종류를 선택할 수는 있다. 바깥만 두리번거려서는 확신이나 안녕과 평생토록 조우할 수 없다. 두리번거리는 것도 제대로 해야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