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눈치 재빨라

아이고 무서워라

by 정 호
엄마: 어.. 어.. 잔다. 안 돼 지금 재우면 안 돼 빨리 깨워.

아빠: 아들! 정신 차려! 아빠랑 쌍권총 할까

아들: 좋아

아빠: 쌍권총! 하나 빼기 일!

아들: 어? 아빠 바꿨어

아빠: 아니야 안 바꿨어

아들: 아니야 바꿨어. 나 눈치 재빨라. 이건 반칙이야.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재잘거리던 아이의 입이 조용해질 때가 있다. 필경 둘 중 하나다. 무언가를 가만히 구경하고 있거나 잠이 들었거나. 그런데 애매한 시간에 차에서 잠들어버리면 다시 에너지가 충전되 늦은 시간까지 활력이 충만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낮잠을 재우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야 한두 시간이라도 자유로운 저녁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었다. 주말을 이용해 나들이를 다녀오던 어느 날, 아이는 눈꺼풀이 스르륵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던 아내는 아이가 잠들려는 그 찰나의 순간을 재빨리 알아채고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재우면 큰일 난다는 듯 나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어떻게 하면 잠을 깨울 수 있을까 하다가 요즘 재미를 붙인 쌍권총 하나 빼기 일 놀이를 하자며 아이의 시선을 끌었다.


주먹을 느리게 내밀고 있는 내 손을 쳐다보며 아이는 보를 내밀었다. 나는 재빨리 주먹을 가위로 바꿨다. 게임을 할 때조차 장난으로라도 아이 앞에서 속임수나 거짓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한데 그날은 왜인지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그리고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반응에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 눈치 재빨라


눈치가 빠른 것도 아니고 눈치가 재빠르다니, 그 표현과 말투와 표정의 삼박자가 너무 진지하고도 근엄해서 하마터면 잘못했다는 말이 나올뻔했다. 몇 번의 장난 덕분에 아이는 잠이 깼는지 다시 쌩쌩해졌다. 그렇게 눈치가 재빠른 아들은 단 한 번의 반칙도 허용하지 않고 반칙하는 아빠를 혼내느라 근엄해졌다가 가위바위보를 이겨서 깔깔거리기를 반복하며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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