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좋아
아들: 아빠 우리 같이 놀자
아빠: 그래 같이 놀자~ 오늘은 뭐 하고 놀까?
아들: 마리오 악당 놀이 하자. 내가 마리오 아빠가 악당 해
아빠: 아들이 몇 살 될 때까지 이렇게 아빠랑 같이 놀까?
아들: 백 살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한 지 이제 일 년 반이 되어간다. 일 년 반 동안 아이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빠빠빠빠로 시작한 옹알이가 아빠가 되었고 아빠 아빠 하던 단어는 문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문장 또한 점점 다듬어져 세밀해진다.
아이의 언어 표현력이 성숙해져 간다는 것은 정상적인 성장을 뜻하기에 기쁘고 반길 일이지만, 아이가 크는 것이 아까워 조금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는 다른 부모들의 말이 이제야 오롯이 와닿는다. 혼자서 몸도 가누지 못하여 버둥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생아 시절도, 혼자서 뒤집고, 앉고, 서고, 걷는 폭풍 같은 성장의 시절도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귀한 시절이지만 그때는 몸과 마음이 힘들어 나의 두 눈은 오롯이 아이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보다는 마음의 일정량을 저울질하며 이쪽저쪽으로 조금씩 나누어 담을 때도 있었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아이가 더 예뻐 보인다는 앞서 아이를 길러본 지인들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든다. 울고 웃는 현상은 겉으로 보기에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원인은 동일하다.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에는 어른의 말과 다른 매력이 있다. 매력의 근원은 솔직함이다. 아이의 솔직함은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에 너털웃음을 짓게 하기도 한다.
백 살까지 아빠와 함께 놀겠다는 아이의 말은 분명 솔직한 마음일 테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마음은 변하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유효한 솔직함일 테다. 언젠가는 변할 것이 확실한 대상의 유한한 빛남은 당연히 광채를 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감사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부모는 자녀를 떠나보내기 위해 기른다. 잘 떠나보내는 일, 잘 떠나는 일, 그것이 부모와 자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겠지만 백 살까지 함께 하겠다는 아이의 순진하고 솔직한 말을 오늘은 가슴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