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자연, 아! 자연!
몸이 좋지 않다. 며칠 째 머리가 아프다. 심각하게 아픈 것은 아니지만 발바닥 속이 간질간질하여 긁어도 시원하지 않은 것처럼 두피와 뇌 사이 그 어디쯤에서 아주 기분 나쁘게 살짝, 하지만 삼일째 지속적으로 미세한 통증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물감이 몸에서 느껴질 때면 죽기 싫다는 본능은 몸을 움직이게 한다. 그렇게 마지못해 꾸역꾸역 운동복을 입고 산책길에 나선다. 살짝 숨이 찰 정도로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 집에 돌아와 샤워 후 얼음물을 한잔 마시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에 컨디션이 회복된다. 오늘도 그런 기대를 안고 병원에 가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운동을 나가기는 참 싫지만 매번 그렇듯 운동을 하고 있으면 점점 기분이 좋아진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는 말은 사실이다.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우울증은 체조만 해도 낫는다며 다자이 오사무를 비판했다는데 그의 생애와 철학, 삶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운동의 효능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게 조금씩 두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온다. 한여름의 저녁 일곱 시는 내리쬐는 태양 빛에 제대로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지경으로 우리의 눈을 잠식한다. 은은하게 노을 지는 태양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애달프게 느껴진다면 똑같이 저물기 직전이면서도 강렬하게 타오르며 온 세상을 눈부시게 비추는 태양은 노을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무엇일까. 무엇이 저 작렬하는 태양과 내 안에 아름답다는 감정을 연결시킨 것일까. 은은한 노을은 하늘을 물들이지만 작렬하는 태양은 온갖 사물들로 하여금 새로운 빛깔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다. 초록의 잔디는 더욱 선명하고 투명한 초록이 된다. 태양은 마치 나무와 잔디의 뿌리에까지 빛을 찔러 넣기라도 하겠다는 듯 강렬하게 땅의 위아래에 자신의 역량을 쏟아붓는다. 호수에 잔잔하게 고여있던 물은 해로부터 하사 받은 강렬한 섬광에 힘입어 고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반짝이며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자랑이라도 하듯 넘실대는 듯 보인다.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 태양의 빛줄기는 자신을 가리고 있는 구름을 밀어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강렬하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양 빛이 가장 강렬할 때 아름답다는 느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태양 그 자체가 아니라 태양 빛을 받아 평소와 다른 색감을 뿜어내는 태양 주변의 사물들이다. 빛을 받은 호수, 빛을 받은 잔디, 빛을 받은 구름, 빛을 받은 아이의 미소. 그렇게 강렬한 햇빛은 자기 주변을 새로이 빛나게 한다.
우리는 스스로 빛나기 위해 애쓴다. 그 역시 아름다운 일이다. 다만 혼자만 강렬하게 빛나기보다 주변을 빛나게 만드는 사람이 더 아름답다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평소와 다른 새로운 색감은 그렇게 우리의 시선을 빼앗고,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들고, 아름답게 만들어준 대상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한다. 태양은 홀로 빛날 때도 아름답지만 주변을 비출 때 더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구나, 그런 배려와 상생의 원리가 느껴져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구나... 그런데 이상하다. 한여름의 태양은 늘 빛나고 강렬해서 주변의 사물을 비추고 있었을 텐데 왜 열한 시의 태양이나 오후 두 시의 태양을 바라볼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해질녘 시간대를 좋아하는 성향 탓에 주관적인 느낌인지 모르겠으나 해가 낮은 곳에서 비출 때 비친 사물의 색감이 유독 더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온다. 한낮의 쨍한 하늘보다 약간 힘이 빠진듯한 색감의 하늘 탓일지도 모르겠다. 햇빛은 오후와 똑같이 쨍하게 비치고 있으나 눈에 들어오는 자연과 사물은 한낮에 비해 더 편하게 두 눈에 들어온다. 낮게 떠있는 해가 내 두 눈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저물기 직전의 태양이 주변의 색을 살리는 모습은 달리던 두 다리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그 한없는 자애의 마음을 넋을 놓은 채 바라보게 된다.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어쩌면 죽기 직전까지도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런 사람을 마주하며 아름답다는 감정을 느낄 리 없다. 자연은 아름답다. 자연을 닮은 사람 역시 아름답다. 그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며 우리의 본능은 자연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결코 예능이 될 수 없는 이유, 나이를 지긋이 먹어 자연의 이치에 도달한 어른들이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삶이자 다큐이며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좇고 진실에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