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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21. 2020

소수에 속하는 일

크고 작은 장벽들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정합시다.


 항상 옳을 것이라는 그 어떤 담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기에 다수가 동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합의되고 마는 암묵적 사회규칙.


 소수에 속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만약 충분한 논의라도 이루어졌다면 그래도 덜 억울했을지 모르겠지만 항상 바쁘기만 한 우리들은 반대의 의견을, 게다가 힘없는 소수가 제시하는 반대 의견을 정성스럽게 귀 기울여 듣는 노력을 대체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때로는 소수에 속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서럽고 억울한 일이 될 수 있으며 자칫 배려 없는 조직 속에 던져질 경우 그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성 소수자, 이민족, 장애인 등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재조명되는 비극의 주인공과 같은 서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주변이나 나 자신을 통해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분명 잔잔하게나마 몇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조금 덜 심각한 예를 한번 들어보자.

공대에 다니는 여학생이나 간호대에 다니는 남학생들은 군계일학이 되거나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인물이 된다고 한다. 양극단을 두고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는 것이다. 남자가 많은 직종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처럼 한쪽 성비가 극단적으로 많은 조직에서 그 반대의 성을 가진 사람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소수자로서의 삶이라고 볼 수 있다.  


 B급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것들. 소위 대세가 아닌 것을 좋아하는 비주류의 감성 또한 소수의 취향이라 할  있다. 대세 아이돌이 아닌 비주류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  할리우드 대작이 아닌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것. 혼이 대세인 사회에서 비혼 선언을 하는 것. 소수의 취향을 뜻하는 매니악하다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묘한 부정적인 뉘앙스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소수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때때로 다수에 의해 폭력적인 상황을 경험하곤 한다.


 대표적으로 술을 못하는 사람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회식 자리에 참여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요즘은 점차 다양성과 소수자를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어가는 흐름인 것 같지만 여전히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풍기며 술을 권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대학시절, 과 나누기라는 행사가 있었다.


 교육대학교는 입학을 한 후에 과를 정하게 되는데 최종 합격을 하고 들뜬 마음으로 대강당에 모여서 각 학과의 회장들과 동아리 회장들의 PR을 가만히 지켜보며 내가 4년간 몸담을 과와 동아리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 당시 한 학과 과회장의 학과 소개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쿨한 태도와 당당한 말투로 학과와 관련된 그 어떤 소개도 없이 오직 본교의 전체 학과들 가운데 가장 술을 많이 마신다는 말 하나만으로 학과 소개를 마무리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학과만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소수성 덕분에 나는 소수자의 입장을 조금은 세심하게 살필 줄 알게 되었다.


 나의 특성 가운데 내가 소수라는 것을 가장 자주 자각하게 만들었던 것은 왼손잡이라는 특징이다. 식사를 할 때, 가위질을 할 때, 악수를 할 때, 강의실 의자의 오른편에서 책받침을 올려야 할 때, 글씨를 쓰다가 손바닥에 연필심이 묻어날 때, 운동을 배우다가 왼손잡이 포즈를 따로 배워야 할 때, 악기를 배울 때, 굳이 필요 없는 추가 설명을 해야 하는 일이 참으로 번거롭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또 다른 것으로는 색약, 비염, 다한증 등 신체적인 질병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었다는 점이다. 다한증에 관해서는 따로 글을 한편 썼을 정도로 수많은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왔고, 색약 역시도 문과 이과의 갈림길에서 문과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만큼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나의 친애하는 적과도 같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증상이 거의 사라졌지만 성장기였던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코에 약을 넣지 않으면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비염 증상이 심해서 성장기에 큰 스트레스의 일부분으로 작용했던 기억이 있다.


 또 한 가지 나의 삶에 있어서 소수의 입장을 경험할 수 있었던 일은 공익으로 군 복무를 했다는 점이다.

1,2,3등급이라는 신체 등급을 부여받은 대다수의 한국 남자가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치는 반면 4등급이라는 신체등급 판정을 받은 일부의 남자들은 대체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기간을 채운다. 평소에는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술자리나 운동을 하는 자리 등, 남자들끼리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에서는 빠지기 힘든 대화 주제 중 하나가 군대 이야기인 만큼, 항상 이런 상황이 도래하면 소수자로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다수에 속해 있다는 것은 편안한 일이다.


 숫자가 많기에 눈에 띄지 않고, 내가 그 포지션인 이유를 굳이 따로 설명해야 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다수는 소수를 살피려 하지 않는다. 신경을 쓰고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일은 본능적으로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혹은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무관심함일 수도 있다. 애초에 내가 속해있지 않고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소수의 그룹에 소속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깨닫고 다수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소수를 위한 발언을 하고, 소수자들 역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호혜성이 발휘될 때 세상은 한 발자국 더 진보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 소수라는 이름을 가진 섬에 표류하고 있는가.

혹은 어떤 다수의 입장에서 그동안 무관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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