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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23. 2020

너구리는 사골육수와 어울리지 않는다.

조화로움이 선사하는 행복감

 한창 성장이 이루어지는 유소년기에는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특히 모유를 끊은 이후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생후 6개월 이후에는 음식을 통해 철분을 충분히 공급해주어야 하는데 이 철분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이 고기, 고기 중에서도 소고기에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하여 갓 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아이에게 먹이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소고기를 사러 정육식당에 들르곤 한다. 매번 아이 먹을 고기만 사서 나르다가 문득 진열대에 전시되어있던 사골 국물에 눈길이 갔다. 사골 떡국, 사골 부대찌개 등 사골이 들어가는 음식을 좋아하고 라면도 사리곰탕면을 좋아했었던 옛 추억을 떠올리며 10팩에 한 묶음으로 포장되어있는 사골국물 한 세트를 사서 집으로 왔다.


 저녁을 해 먹을 시간인데 이것으로 무슨 요리를 해먹을 것인가. 마땅한 재료도 없고 배는 고프고 부인은 처갓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고... 이 한 몸 허기를 달래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대한민국 국민의 소울푸드, 라면을 끓여먹어 보기로 했다.


 집에 있는 라면을 뒤적거려본다. 너구리, 무파마, 짜파게티, 비빔면,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너구리와 무파마. 이날은 시원한 국물을 맛보고 싶었기에 무파마로 결정했다. 사골육수를 끓이고 라면을 대충 넣은 다음, 파와 계란 정도의 토핑만 올려서 끓여냈다. 면발이 꼬들하다. 국물 역시 내가 원했던 사골국물의 진한 맛에 무파마의 시원한 수프 맛이 어우러져 상당히 만족스러운 맛을 내주었다. 조화롭다. 사골육수의 진하고 깊은 맛도 충분히 느껴지면서 라면 수프의 맛이 그 위에 살짝 포개어져 두 가지 맛이 충분히 느껴지며 서로 잘 어우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가 지났다. 어제 사골육수 라면을 너무 맛있게 먹었던 탓일까. 오늘도 한번 더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너구리를 선택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어제 느꼈던 그 만족감을 오늘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어제 먹었던 무파마는 베이스 사골육수의 맛도 흠뻑 느껴지면서 라면이 맛을 살짝 더해주는 느낌이었다면 너구리는 너구리 본래의 맛이 약간 무뎌진 것, 고작 그뿐이었다. 너구리 순한 맛의 느낌이랄까? 혹은 너구리에 치즈를 살짝 넣은 느낌이랄까? 사골국 한포가 아까워졌다. 조화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면에 토핑으로 올릴 수 있는 재료는 많다. 예전 어떤 라면 브랜드 식당에 가면 수많은 종류의 토핑 가운데 내가 원하는 대로 토핑을 추가해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었다. 나는 여러 가지 토핑 중에 계란을 특히 좋아하는데 어떤 날은 완전히 익혀서 퍽퍽한 계란을 잘라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대충 휘적휘적 풀어서 국물 위에 살짝 얹어 부드럽고 포근하게 익혀 떠먹기도 한다. 한데 하루는 그 둘을 모두 다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계란 하나는 먼저 넣어서 완전히 익히고 마지막에 면과 함께 건져내어 그릇에 담은 다음 미리 풀어둔 계란도 살포시 넣어서 익혀 먹어봤다. 그날 처음으로 라면을 먹으면서 계란 비린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우연인가 싶어서 그다음에도 몇 번 그렇게 먹어봤는데 그때마다 계란 비린내가 나는 것을 느꼈다. 조화롭지 못한 것이 어떤 불균형을 야기시키는지 깨달았던 또 한 번의 순간이었다.


 요리 초보들에게 이런 실수를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무슨 요리가 되었건 무턱대고 마늘도 넣고 양파도 넣고 당근도 넣고 버섯도 넣고 고추장, 고춧가루에 설탕, 소금, 간장 등등... 이것저것 넣다 보면 이것이 김치찌개인지 닭볶음탕인지 떡볶이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조화롭지 못한 것들은 시너지를 내기 위해 애써 모여봤지만 혼자 있을 때만 못하게 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꿈꾸었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현한다는 것만으로 개봉도 전에 큰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는 영화들이 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해 실망스러운 경우가 있다. 이것은 시나리오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연출이 엉성하기 때문일 수도, 배우들 간의 합이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맛깔스러운 영화가 탄생하게 된다.


 무조건 많이 덧댄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악하고 볼품없어 질지도 모를 일이다.

보탤 곳에 보탤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맛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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