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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28. 2020

수제 쨈을 먹는 이유

삶의 작은 변주

 요즘 우리 가족은
아침 식사로 식빵에 쨈을 발라먹고 있다.


 아침을 거르기 일쑤였던 우리 부부에게도 어느날  불현듯 아침을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무엇을 먹을까 이리저리 고민하던 끝에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대안이 식빵에 쨈이었다. 토마토와 계란 프라이라도 올려서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자는 처음의 다짐이 무색하도록, 일주일 전에 사다 놓은 토마토는 처음 상태 그대로 봉투에 담겨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고, 계란 프라이는 김장 김치를 담그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큰일로 느껴졌던 모양인지 도무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내놓은 새로운 대안은 쨈이라도 다양하게 먹어보자는 것이었다. 마트에서 종류별로 사다 놓은 쨈들을 바라보며 마치 보금자리에 도토리를 잔뜩 쌓아둔 다람쥐라도 된 것처럼 들뜬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분명 쨈을 번갈아가면서 먹었는데, 분명히 어제 먹은 쨈과 오늘 먹은 쨈은 다른 쨈이 확실한데, 어째 그 쨈이 그 쨈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성품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생산자에 의해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물품, 미리 일정한 규격대로 만들어놓고 파는 물품


 마트와 빵집에서 파는 쨈은 기성품이다. 기성품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하다는 점,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평균의 입맛에 적당하게 어울리는 품질을 보장하며, 적당한 가격을 갖추고 있는 점 등을 금방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장점이 곧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익숙하기 때문에 금세 질릴 수 있다는 점, 쉽게 구할 수 있기에 마음에 소중하게 품기가 어렵다는 점, 평균의 취향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평균을 벗어난 수요를 충족시키기가 어렵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취향이 확실하고 자신의 기준이 확고한 사람들은 기성품으로 만족감을 느끼기가 어렵게 된다.


 게다가 나의 취향에 정확히 들어맞는 물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고 시간이 곧 돈이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요즘 같은 시절을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런 수고스러움이 따르는 소비의 형태는 때때로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게다가 보통이거나 혹은 둔한 사람이라면 알아채기 어려울 법한 미세한 차이를 느끼고자 오랜 시간을 공들여가며 나의 취향을 찾고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나의 취향에 어울리는 소비로까지 이어지는 삶의 패턴은 때때로 타인에게 피곤하다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합리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배신자라고 불려 마땅할지 모르겠으나 행복과 재미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 없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세대를 거듭해 나갈수록 시대와 인간은 서로에게, 다양한 것들을,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것들을 요구해댄다. 그리하여 우리는 생각하는 인간이었던 호모 사피엔스라는 정의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로 명명되지 않았는가.


 현세대가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으로 정의되었다면 기성품에 만족하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마땅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라는 것은 애초에 기호와 취향을 바탕으로 각자 다르게 느끼는 것이 분명한데 규격대로 만들어진 기성품을 통해서 재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과도 같다. 우연히도 나의 취향이 기성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그곳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면야 그것은 또 그것대로 축복받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창하게도 나는 그래서 수제 쨈을 먹어 보기로 했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재미를 찾기 위한 작은 변주 가운데 하나로 수제 음식을 맛보는 일을 선택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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