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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May 10. 2024

아빠 바둑은 술래잡기 같아

그리고 우리의 관계 같기도 

아들: 아빠 그거 알아?

아빠: 뭔데?

아들: 바둑은 술래잡기 같아

아빠: 그게 무슨 말이야?

아들: 서로 쫓아가고 도망치다가 잡으면 이기고 잡히면 지는 거야.


집 앞에 바둑 학원이 있길래 한 번 보내봤더니 바둑에 재미를 붙인 모양인지 아이는 아침저녁으로 바둑을 두자는 말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두어 달 다녀놓고 자신이 바둑의 고수라도 된다는 듯 바둑 까막눈인 아빠에게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전수하느라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아빠의 바둑 선생이 된다.


"으핫 받아라 장문이다!"

"아니야 아빠 그렇게 두면 자충이야"

"어떠냐 이건 몰랐지? 환격이다!"


아이는 아빠를 상대로 자신이 배운 바둑 용어를 하나씩 설명하며 제법 바둑 배운 티를 낸다. 얼마 전에는 이창호배 바둑대회에 나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화동 역할을 하고 왔다. 이러나저러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어찌 되었건 주목을 끄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비록 대회 결과는 1승 3패로 5명의 유치부 참가자 가운데 4등이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1승을 거둔 데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음이 기특하다. 그렇게 아이는 다음 대회에서는 2승을 하겠노라고 투지를 불태우며 매일 아빠를 상대로 바둑 놀이에 흠뻑 빠져있다. 


어느 날 저녁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귀여운 수싸움을 하는 듯 바둑돌을 집어 들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바둑은 꼭 술래잡기 같다며 아빠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서로 쫓고 쫓기며 잡거나 잡히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꼭 술래잡기 같다고 답하는 아이의 말에 무릎을 친다. 아이의 눈에 바둑이란 그런 것이구나, 꼭 술래잡기와 같아서 잡거나 잡히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 잡으면 이기고 잡히면 지는 것. 바둑과 술래잡기를 연결시키는 아이를 바라보며 언제 이렇게 컸을까 대견한 마음에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만히 생각하니 부모와 자식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아이가 어린 시절에 아이는 부모를 끊임없이 쫓는다. 그것이 본능에 의한 것이건 필요에 의한 것이건 아이는 늘 부모를 바라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쫓음의 방향은 뒤바뀐다. 아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아이는 부모를 더 이상 쫓아가지 않고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고 그리워하는 시간이 늘어간다. 쫓고 쫓기는 관계, 어쩌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 역시 그런 것은 아닐까. 비록 그 쫓음이 승리를 위한 쫓음은 아닐지라도 시간의 격차를 두고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끝내지 못할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부모 자식 관계를 단순히 쫓고 쫓기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리라. 바둑 안에 치열한 수싸움과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이 벌어지듯 너와 나의 앞날에도 무수한 변수들이 맞물려 때로는 스스로를 옥죄는 자충수를 두기도 하고 때로는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장문을 두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 애쓰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짜릿한 환격으로 원하는 결실을 맺게 될 날을 함께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둑에 관해 일자무식이지만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바둑은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선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마 곧 내가 상대하기 어려울 만큼 아이의 실력이 늘어 더 이상 나를 찾지 않게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끼지만 그때 느낄 아쉬움은 훗날의 나에게 맡기고 지금은 오롯이 아이와 함께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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