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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May 11. 2024

겉모습이 그대로라고 변하지 않았을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처럼 가족여행을 갔다. 여행이란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탓에 평소와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추동하게 한다.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베큐장에 앉아 우리는 모닥불 옵션을 요청한다.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자 사장님은 친절한 미소를 얼굴에 띠며 잘게 쪼개져 상자에 차곡히 담긴 장작더미를 내어준다. 고체연료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장작더미에 불이 옮겨 붙기 시작한다. '타닥 타다닥... 탁. 타닥.' 얼마간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던 장작더미는 기세 좋은 화력을 오래도록 유지하지 못하고 조금씩 사그라든다. 근심걱정을 씻어준다는 불멍을 위해 대여섯 조각의 장작더미를 화로에 다시 한번 쑤셔 넣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문득 씨간장 생각이 난다. 


맛집을 가면 선대로부터 대대로 수십 년, 혹은 백 년이 넘도록 전수되어 내려오는 씨간장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수십 년 전 생성된 최초의 본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씨간장, 그것은 보통 훌륭한 맛을 지니고 있지만, 맛을 떠나 본질을 오랫동안 보존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모닥불도 씨간장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장작, 새로운 간장과 이리저리 뒤섞이며 태초의 물성을 잃어버렸을 테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태초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에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고결함이나 거룩함을 획득한다. 장작과 씨간장은 그런 의미에서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혹은 변하지 않았지만 변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아니한가. 내면의 많은 것들이 외부의 온갖 자극과 부딪히며 이리저리 변모해 간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변화를 쉽사리 알아채지 못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은 적지만 십 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는 스스로 인식할 만큼의 변화가 생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때때로 인간은 스스로 엄청나게 변했다고 느낌과 동시에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느끼기도 한다. 이를 변화와 진화의 측면에서 바라볼 것인가, 유지 보존의 측면으로 바라볼 것인가. 


선택은 언제나 스스로의 몫일테다. 장작과 씨간장을 바라보며 일반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은 본질적 속성의 보유, 즉 오래도록 어떤 특정한 물성을 유지함에 대한 예찬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그것은 사실 겉으로 보이는 형태만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 속은 이미 끊임없이 불태워지고 삭아가며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장작과 씨간장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최초의 형태와 유사한 형태만을 보존하고 있을 뿐 그 안의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속성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 이전에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로부터 괴리감을 느끼는 이유는 모두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그대로인 것 같지만 끊임없는 변화를 겪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장작에 새로운 땔감이 보충되지 않으면 재만 남게 되고 씨간장에 새로운 간장이 수혈되지 못하면 썩은 간장이 되듯, 형태의 유지에는 늘 얼마간 외부로부터 자극이 유입되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장작은 새로운 장작이 되고, 씨간장은 새로운 씨간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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