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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May 14. 2024

인생은 결국 몰두해 본 것의 기록

생동한다는 것

확실히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유는 건조한 일상이 반복되고 특별한 이벤트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제는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진다. 사건 없는 일상은 하루를 느리고 흐릿하게 흐르도록 만들지만, 채워놓은 시간이 없기에 지나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그것이 비록 십 년이라고 할지라도 마치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빠르게 흘러간 것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몰두의 시간을 가지면 하루가 마치 찰나의 순간처럼 빠르게 흘러 불과 몇 달의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밀도 높게 꽉 채운 시간은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 과거를 떠올릴 때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들을 건져 올리려고 머릿속을 헤집어 보면 무언가 골몰히 몰두해 봤던 지점들이 둥둥 떠오른다. 사람마다 그 지점 이유는 분르지만, 그 지점은 어떤 길과 이미지가 연결될 때가 많다.


나에게 고등학생 시절과 대학 때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입시와 춤이라는 몰입 지점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고등학생 시절, 밤 10시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서로 다른 반이었지만 같은 독서실에 다녔던 동네 친구들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 독서실로 걸어가곤 했다. 때로는 함께 때로는 각자, 늦은 밤하늘에 아득히 떠 있는 별빛을 바라보며 어두운 골목을 걷던 그때 열아홉 우리는 가슴에 어떤 꿈을 품고 그 길을 걸었던가. 지금은 여의동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통합된 옛 동산동은 10대를 통째로 보낸 덕에 동네 어귀부터 골목 구석구석을 꿰고 있지만 우석고등학교 후문에서 독서실로 이어진 그 길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3년을 꼬박 걸었던 길이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 길을 걸으며 각자의 미래에 대해 친구들과 나눈 대화와 혼자서 미래를 상상하며 흘려보낸 그 시간이 기억 어딘가에 깊숙이 각인된 탓일 테다.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그 짧은 길을 걸으며 아이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아침 부모님이 다툰 일, 일 년 사귄 여자친구가 다른 놈과 눈이 맞은 사건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오늘 모의고사에서는 몇 반 아무개가 성적이 갑자기 올랐고 어떤 선생님이 주말에 몰래 어느 아이 집에서 과외를 해줬다는 또래들의 가십거리, 십 년 뒤에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같이 장교가 되어 지금 이 순간을 추억하자는 미래에 대한 다짐까지. 그렇게 500m 남짓 될 짧은 길을 걸으며 우리는 아주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산동에 살며 전주교대를 다녔다. 동산동과 서서학동은 전주의 끝에서 끝에 위치한 탓에 버스를 타고 가려면 꼬박 한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휴대폰 대리점으로 탈바꿈한 옛 거시기 상회 맞은편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에서 허겁지겁 486번 버스를 타면 팔복동과 전북대를 지나 전주시청에서 한옥마을로 버스가 흘러 들어간다. 유일하게 교대 정문에 정차하는 버스가 486번이었던 탓에 그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차 시간에 맞추려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486번 버스를 놓치는 날이면 남부시장에 내려 1교시 수업에 늦지 않게 헐레벌떡 강의실까지 뛰고는 했는데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이마와 등에 땀이 나는 듯 그날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임용고시를 재수하는 바람에 무려 5년을 꼬박 하루 두 시간씩 버스에서 보내야 했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그 시간을 나름대로 쓸모 있게 활용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대학 시절 몸담았던 댄스 동아리 덕분이었다. 동아리의 최우선 목표는 공연이었고 1년에 총 4번의 공연이 있었다. 각각의 공연을 위해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두 달 동안 연습을 했는데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음악을 들으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시간으로 알차게 활용됐다. mp3에서 아이팟으로 음악 스트리밍 도구가 넘어가던 시점이었고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 아이팟의 위용은 상당했다. 나는 그렇게 5년 동안 아이팟과 함께 대학 시절을 채워나갔고 5년 동안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뻗어있는 기린대로를 횡단했다. 주말을 제외하고 5년, 계산해 보니 대략 천일이요, 천일동안 왕복 했으니 약 이천 번 그 길 위에 서 있었던 셈이다.


인된 기억이란 그저 떠올라 휘발되어 버리는 이미지의 파편이 아니다. 그보다는 삶의 전 생애에 걸쳐 반복적으로 솟아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어떤 중요한 순간에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나침반 혹은 끝없이 자아를 끌어당기는 자석의 역할에 가깝다. 그래서 각인된 기억을 생성해 내는 몰입 경험은 삶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추동하며 기억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한참을 공허함과 싸웠던 이유는 30대가 되었기 때문도, 육아로 인해 내 시간이 없었기 때문도 아니라 그저 내가 온 정념을 다해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잇대별로 각 시절마다 후회되고 부족했던 지점이 왜 없는가, 그럼에도 20대가 되어 10대를, 30대가 되어 20대를 그럭저럭 만족하며 추억할 수 있던 이유는 상당한 시간 동안 무언가에 몰두했던 스스로 어여쁘기 때문이다. 삼십 대 을 관통했던 단어를 그러모아 보자면 조급 방황이다. 몰두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했고, 취직해서 삶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무료함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전심을 다해 몰두할 수 있었던 대상이 없었던 것, 그러한 이유로 취미를 찾아 헤매고 승진에 대해 고민했던 그 시간들은 그것들이 진정 나의 에너지를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대상이었는지 탐색하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지나고 보니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쓸데없는 일에 허송세월 한 것이 아니라 나와 맞는 옷인지 그렇지 않은끊임없이 살피고 시도해 보며 입었다 벗기를 반복했던 이다. 세월이 흘러 글쓰기를 멈추는 어느 시점이 오더라도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0대의 절반을 글쓰기에 몰두해 봤다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30대를 각인시킬 충분한 몰입의 증거를 획득한 탓이다. 쓰는 이유, 글쓰기의 효용은 여럿이 있지만 가장 큰 효용과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내가 좋아서 몰두할 수 있는 일이라는데 있다. 렇게 어느 한 시절을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대상과 만날 수 있다면 인생이 결코 허망하고 덧없지는 않으리라. 그것은 생의 진실된 발자취로서 의미 있는 기억을 생성해 스스로 자신의 삶이 가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어느 길에 잠시 멈춰 서게 될지, 과거가 되어야만 확인할 수 있는 미래를, 여전히 불안하지만 이제는 조금 차분하게 응시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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