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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May 27. 2024

선글라스의 행방

끝이 중요한 이유

"선글라스가 어디 갔지?"


현장체험학습일 아침, 당연히 차에 있을 줄 알았던 선글라스의 행방이 묘연했다. 라식수술을 한 지 10년, 요즘 들어 서서히 시력이 떨어져 가는 것이 느껴지고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밝은 날이면 눈이 부셔서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온종일 야외에서 아이들을 인솔해야 하는 날이기에 눈부심 방지를 위해 선글라스가 꼭 필요했지만 차량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선글라스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가족끼리 놀러 다닐 때는 주로 아내 차를 이용했던 터라 아내 차에 선글라스를 두고 왔나 보다 생각하고 그날은 결국 햇빛을 온전히 두 눈으로 받아들이며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주 주말,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나가며 아내 차에 탔다. "내 선글라스가 여기 있나?", "글쎄 못 봤는데? 한 번 찾아봐" 아내와의 짧은 대화는 여기에도 선글라스가 없을 것이라는 직감을 가져왔다. 이곳저곳 선글라스가 있을만한 곳을 뒤져봐도 예상대로 선글라스를 찾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물건이 쌓여있는 방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선글라스는 그 존재의 흔적을 너무도 말끔히 지워내고 사라져 버렸다. 어디에 두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밑단 길이가 맞지 않는 바지가 은근히 신경을 건드리듯 존재의 행방이 묘연해진 선글라스는 간헐적으로 신경을 건드렸다.


"차 팔면서 선글라스 그대로 놔둔 것 아니야?"


7년 간 동고동락한 첫 차를 얼마 전에 팔았다. 선글라스 보관함에 넣어놓고 빼지 않은 것 아니냐는 아내의 말에 일주일간 묵혀있던 문제가 해결되며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보다 더 이상 미로 속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마침표의 기쁨이 더 컸던 셈이다. 정말 차에 선글라스를 넣어둔 채 중고차 매매상에게 차를 넘겼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선글라스를 두고 멋대로 잘못된 지점에 마침표를 찍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그곳에서 선글라스의 행방에 대한 고민을 마무리 지었다.


종결의 경험은 중요하다. 마무리 짓지 못한 기억은 끝끝내 기억 속에 들러붙어 있다가 언제고 되살아나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은 목표 지점에 닿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령 목표 지점에 가 닿지 못할지라도 종결의 가능성을 생성할 수 있는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에너지를 쏟아붓고도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다. 사고로 가족을 잃고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유족들, 유괴나 치매로 인한 부모의 가출 등으로 오랜 세월 가족의 생사 여부조차 알지 못하는 가족들, 과거의 상처를 정확히 짚어내고 치유하지 못한 채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겨버린 채 살아온 사람들은 종결짓지 못한 시간에 갇혀버리고 만다.


일도 인간관계도 끝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래서 옳다. 마침표를 찍지 못한 마무리는 마무리가 아닌 탓이다. 마무리 짓지 못한 마무리는 결국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불가항력적인 미완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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