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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11. 2024

자유 말고 구속

속박이 당신을 자유케 하리

자유,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모두가 원하고 모두가 갈망하는 이상향.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저항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구속이 때에 따라 오히려 더 강한 자유를 가능케 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헌터헌터라는 만화가 있다. 소년들이 등장해 적과 싸우며 성장해 나가는 전형적인 소년 성장 만화인데 이 만화에는 특이한 개념이 있다. 캐릭터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 구속과 서약을 걸어야 하는데 구속과 서약이 강할수록 자신의 기술이 강해지는 식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기술을 발동시킬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해 놓을수록 능력이 발휘되었을 때 그 파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주인공 중 한 명인 크라피카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기술을 특정한 상대방과 싸울 때에만 발동하게 걸어놓았는데 기술의 발동 대상이 매우 좁아 제약이 심했기 때문에 다른 상대와 싸울 때는 해당 기술을 사용할 수 없지만 해당 상대방과 싸울 때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한다. 어릴 때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설정을 해놨는지 이해되지 않던 콘셉트였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그 의미가 와닿는다. 크라피카에게 자유란 복수할 수 있음이다.


자동차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요즘 차량들은 모드 전환이 가능한데 차량마다 그 명칭은 다르지만 보통 스포츠, 노멀, 에코(연비) 이렇게 세 종류로 모드 전환이 가능하게 설정되어 나온다. 스포츠 모드는 액셀과 브레이크 반응이 민감해지며 하체가 탄탄해지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급가속 급정거 코너 회전에 특화되는 등 자동차 본연의 운동성능이 향상되는 대신 연비가 떨어지고 승차감이 안 좋아지는 손해를 본다. 에코 모드는 그와 반대로 액셀, 브레이크 반응이 다소 느려지고 차체가 말랑해지는 느낌을 줘서 자동차 본연의 운동성능은 떨어지나 연비와 승차감이 좋아진다. 노멀은 스포츠와 에코 그 중간 어디쯤을 지향한다. 모드를 바꿔가며 다양한 상황에서 운전을 해보니 처음에는 스포츠 모드가 운전하기 좋았다. 빠른 변속과 시원한 가속력, 휘청대지 않는 균형감. 하지만 자동차의 성능이 극대화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성능을 충분히 느끼고 싶은 마음에 운전을 거칠게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서 에코 모드로 운전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운전 습관이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이 역시 억제와 구속을 통해 사고위험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안전에 대한 강화를 꾀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다 오랫동안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에게 운전에서의 자유란 거칠게 운전할 수 있음이 아니라 무사고로 오랫동안 운전할 수 있음이다.


자유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지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이처럼 때때로 억제는 되려 좋은 효과를 낼 때가 있다. 바디 프로필을 찍기 위해 3개월간 식단 조절을 하며 다이어트를 해오다가 오랜만에 맥주 한잔을 들이켤 때의 쾌감은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실 때의 쾌감과 다르다. 리쌍의 노래 가사처럼 3년 만에 집에 온 뱃사람의 사랑은 그간의 구속과 절제로 인해 뜨겁게 폭발한다.


그것은 강화이자 승화다. 넘치는 자유는 자기 절제력이 극에 달한 일부에게만 허용된 달콤한 꿀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무한의 자유를 감당하지 못한다. 무한의 자유는 사람을 몰락시킨다. 나태해지고, 염치 없어지며 그 무엇도 이뤄내려 움직이지 않는다. 구속과 자유를 오가는 편이 오히려 더 큰 자유의 해방감을 느끼게 만들고 건전한 삶을 가꾸도록 추동한다. 자유롭지 못하니 언제고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완전한 자유에 이르렀을 때 황폐해질 삶을 생각해 본다면 자유 역시 궁극의 이상향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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