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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l 12. 2024

가장 사랑하는 것을 가장 먼저 잃는다는 말

상실감 

상실을 겪어본 사람들은 말한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가장 먼저 잃게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가장 사랑했기에 가장 먼저 잃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들은 백번 천 번 잃어버려도 상실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연애를 하더라도 상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그가 감정이 메말랐거나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이 아니라 상실감을 느낄 만큼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른의 나이를 먹고도 "난 한 번도 차여본 적이 없어"따위의 말을 하며 사랑에 있어 상실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고등학생 때 이미 죽고 싶을 정도의 상실감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상실의 슬픔은 절대적인 나이나 시간의 순서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큰 마음을 내어준 적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먼저 경험하게 된다. 어린 시절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부모의 이별을 지켜봐야만 했던 아이들이 겪는 상실감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그것과 필적한다. 세상에 태어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의 연대가 갈가리 찢기는 것을 두 눈 뜨고 바라봐야 하는 아이의 마음에 드리운 상실의 그림자는 아이의 나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사랑했던 대상인 탓이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의 눈빛은 노을을 품은 윤슬의 그것처럼 일렁이며 반짝인다. 반짝이던 까만 눈동자가 초점 없이 흐린 눈으로 변하는 것은 꿈꿔왔던 미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아가며 아주 가끔씩 희망, 목표, 사랑, 관계, 기대, 기쁨, 설렘과 같은 희망찬가를 불러대며 어떤 대상에게 온 마음을 내준다. 온 마음을 다한 만큼 그 대상에 가 닿을 수 있다면 그때 우리가 느낄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전율을 전달하겠지만 나의 기꺼운 마음이 목표한 대상에 가 닿지 못하고 오갈 데 없어진 신세가 된 뒤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감정은 심장을 찌르는 듯한 상실감이다. 


가장 사랑하는 것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사라짐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언제고 분명히 강력한 상실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모두 무언가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탓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매번 최초의 충격인 것처럼 우리를 강타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상실감이란 생을 제대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굴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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