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무아
사람마다 예술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 영화, 책, 미술, 음악, 드라마, 광고, 어떤 장르가 되었건 작품을 평가하는 나만의 가장 큰 기준은 몰입감이다. 고전이라고 해서, 유명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몰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맞닿아 있을 때 조금 더 몰입이 잘 되기는 하지만 반드시 꼭 그렇기만 한 것도 아니다. 나의 경험과 맞닿은 부분이 전혀 없더라도 때로는 완전한 몰입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완벽히 어떤 작품에 몰입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그 이유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곳곳에서 집중력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력이나 어울리지 않는 배경 음악이라던지, 어린아이가 쓴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대사나 납득되지 않는 스토리의 개연성, 인물에 서사가 부족하다던지, 어색한 CG, 한때의 유행으로 흘러 지나간 주제 같은 것들. 물론 그런 것들을 감안해도 훌륭한 작품이 많지만 순간순간 몰입이 깨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몰입감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창작자가 창조해 낸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횡단하는 것,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행위. 고양감, 신비감, 의식의 일시적 정지상태, 몽환감, 자아를 잠시 잊어버리는 일, 해탈의 경지와 비슷한 상태. 그것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귀하다.
타인의 세계에 빠져드는 일은 힘의 역동성이라는 측면에서 창작자가 강력한 흡인력으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여 마치 창작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무의식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관람객의 강력한 자아가 필요하다.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또 다른 세계에 홀린 듯 끌리기 때문이다. 완벽성을 갖춘 창작물은 그렇게 강한 자아를 끌어당긴다. 의외로 배운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빠져드는 것을 보면 사이비종교 역시 일종의 완결적인 세계관을 갖춘 창작물일지도 모르겠다. 연애도 그렇게 본다면 강한 흡인력에 의해 세계관을 넘어가는 행위이므로 가장 창조적인 행위에 매료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아가 아주 강한 사람, 반대로 아주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이처럼 완결성을 갖춘 창작품 앞에서 거의 동일하게 무력해진다.
시간도 없고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같은 작품을 두 번 이상 관람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같은 작품을 기꺼이 몇 번씩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관람하곤 한다. 이는 그 작품의 세계관이 나를 완전히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 기분 좋은 잠식 상태에 흔쾌히 빠져들고 싶다는 것은 창작자에 대한 최대의 찬사임이 분명하다. 작품을 보고 며칠씩 계속 생각나고 기분 좋은 흥분상태가 반복되며 고양감을 느끼는 것. 그것은 자극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그런 세계관을 구축해 낸 작품들을 만날 때 나를 잊는 일에 흔쾌히 동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