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성 라퓨타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를 짐 지우는 것.

by 정 호

인간은 늘 무언가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것은 지향점, 이상향, 목적의식이라 불리며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게끔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돈, 명예, 권력, 유명세, 자아실현, 사랑, 그것이 무엇이 됐건 사람에 따라 이름만 달라질 뿐 모두 각자가 행복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이자 꿈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꿈은 때때로 그것을 원했던 사람을 괴롭게 만들기도 하고, 타의에 의해 짐 지워지기도 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등장인물들의 인생 과업에 관한 이야기다.


해적무리의 우두머리 도라에게 라퓨타는 보물섬이다. 해적이란 애초에 금전을 쫓는 것이 삶의 목적인 존재다. 그런 존재에게 세상의 보물이 가득한 전설의 섬 라퓨타는 그야말로 일확천금의 꿈을 이룰 가장 완벽한 도구다. 그렇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도라와 그 일당은 순수하게 그 목적에 충실한다. 라퓨타의 숨겨진 왕족이었지만 정부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며 라퓨타를 찾아다닌 무스카에게 라퓨타는 권력의 상징이다. 순식간에 세상을 지배할 만큼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고 인류의 무기로는 털끝만큼도 손상되지 않는 방어력을 구축한 천공의 성은 그야말로 권력자의 힘을 드러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요새이자 전함이다. 파즈에게 라퓨타는 증거다. 아버지가 언젠가 목격한 적이 있다며 들려준 천공의 성에 관한 이야기에 파즈는 이 세상에도 그런 꿈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된다. 사람들이 그것은 거짓이라고, 세상에 그런 천국 같은 곳, 이상적인 곳은 없다고 말할 때마다 파즈는 흔들리지 않고 아버지의 말을 굳게 믿는다. 그리고 결국 라퓨타를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한다. 시타에게 라퓨타는 반드시 스스로 매듭지어야 할 과업이다. 시타는 라퓨타의 왕족으로 태어나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신비의 돌을 지니고 있던 탓에 정부와 해적으로부터 쫓기고, 수 없이 목숨을 잃을뻔한 위기에 처한다. 시타에게 라퓨타는 무거운 짐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태어날 때부터 짐 지워진 운명,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멸망의 주문을 외움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짓누르던 라퓨타를 날려 보내고 시타는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파즈와 함께 지상으로 향한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인생을 바쳐 무언가를 좇으며 살아간다. 도라처럼 돈에 목숨 걸며 살기도 하고 무스카처럼 권력과 힘을 쟁취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파즈와 같이 일평생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타처럼 짊어진 짐을 내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도 있다. 천공의 성 따위는 없다고 말했던 이들처럼 어떤 사람들은 그저 목적의식 없이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기도 한다. 그것이 비록 끝없는 갈증을 유발하는 욕망이라고 할지라도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달리는 삶이 목적의식 없는 삶보다 나은 것인가 싶다가 또 한편으로는 차라리 처음부터 라퓨타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늘 위를 떠다니는 천공의 성을 디자인하며 감독은 어찌하여 나무의 이미지를 차용했을까. 성의 상층부보다 훨씬 크고 긴 뿌리, 그 크고 긴 뿌리를 통해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결코 쉽게 닿을 수 없는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동안에도 라퓨타라는 꿈과 이상의 공간은 어딘가로부터 엄청난 양분을 흡수해야만 했던 것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든다. 이상, 목표라는 것을 향해 도전하는 수많은 사람들, 하지만 그들 중 자신의 꿈을 이루는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라퓨타는 그렇다면 무수한 희생양의 비명을 양분 삼아 자라날 수밖에 없는 고통 속에 피는 꽃인가.


영화의 후반, 해적단의 비행선 상부에 보초를 서기 위해 줄을 연결하여 높이 띄운 작은 비행기 모형의 초소에 시타와 파즈는 서로의 몸을 한 줄의 끈으로 연결하여 꼭 붙어 앉는다. 그들은 라퓨타를 멸망시키는 주문을 외운 뒤 그 작디작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탈출에 성공한다. 애초에 비행이 아닌 보초를 목적으로 만든 장치이기에 엔진을 달 이유가 없었겠지만 아무런 기계적 장치 없이 오직 날개만 달린 구조물에 의해 어린 두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하는 모습은 인상 깊다. 그것은 마치 돈과 명예, 꿈이나 미래 같은 그 어떠한 목적의식 없이, 아무런 동력이 없어도 순수한 어린아이들은 얼마든지 자유와 행복을 향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영화 내내 파즈는 조급하다. 자신과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해야 하고, 시타를 지켜야 하고, 시타를 구해야 하고, 적과 싸워야 한다. 여유로울 틈이 없다. 시타는 불안하다. 자신에게 짊어진 짐이 부담스럽고, 정체 모를 적들로부터 도망쳐야 하고,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둘이 라퓨타에 도착해 껴안고 잔디밭에 누워 해맑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른들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길러낼 아이들 또한 그렇게 조급함과 불안함을 털고 잠시 잠깐이라도 마음껏 웃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른들에게 가장 소중한 천공의 라퓨타는 아이들의 웃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