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마니

방임, 자립, 애정, 성장

by 정 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불행한 아이들은 세계가 좁아진다. 교류와 확장보다 밀폐와 침잠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능의 메커니즘이다. 친부모 밑에서 자랐건 양부모 밑에서 자랐건, 혹은 부모가 없건,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은 아이들은 그 분노와 슬픔을 가슴에 끌어안고 자신을 죽이며 살아간다. 영화의 주인공 안나, 그리고 안나의 조력자로 나오는 마니(안나의 외할머니), 둘은 모두 방임의 피해자다.


안나의 부모는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영유아 시절에 부모를 잃은 안나는 외할머니 마니의 품에서 잠시 길러지지만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은 마니 역시 안나를 데려온 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충격으로 사망한다. 천애고아가 된 안나는 다행히 좋은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성장한다. 하지만 자신을 놔두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를 원망하고, 사랑으로 자신을 길러준 양부모를, 보조금이 목적인 파렴치한으로 오해하며 세상에 대한 증오를 키워간다. 그렇게 아이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세상을 미워하게 되고, 그런 방식으로 세상에 반응하는 자신을 미워하며 어찌할 줄 모르는 시절을 보낸다.


안나의 양모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안나를 위해 방학 동안이라도 한적한 시골에서 요양하고 올 것은 권유하는데 그곳은 우연치 않게도 마니(안나의 외할머니)가 어린 시절 살았던 마을이다. 안나의 무의식에 새겨진 마니의 추억은 생동하는 현실과 마주함과 동시에 안나로 하여금 환상을 보게 한다. 끊임없이 안나에게 사랑한다고 애정을 표현하고 서로의 속마음을 나누며 비밀의 시간을 공유하는 마니의 이미지가 손녀를 사랑하는 조부모의 사랑으로 해석되어 그 애틋함이 느껴진다.


안나는 어린 시절 마니가 자신에게 들려준 마니의 옛이야기를 자신의 눈앞에 재생하며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서서히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안나는 꽤 오랜 시간 마니와 함께하며 서서히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하려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한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방임이라는 주제와 맞물려 한 없이 슬픈 기분이 들게 한다.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세상에 대한 증오를 뿜어내던 영화 초반과 달리 영화 후반에서 안나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고, 양모의 진심 어린 사랑을 깨닫고, 환상 속에서 자신을 보듬아주던 할머니 마니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한다.


주인공의 결핍과 성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많다. 가능하면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영화, 분노하게 만드는 영화를 많이 보려 하는데 그 이유는 슬픔과 분노가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쁨은 현재를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촉진제이지만 슬픔과 분노를 다루는 영화는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미래를 상상하게 하여 아이들의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조력자,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 이 두 가지 요소는 아이들을 위한 성장 동화에 필수 장치다. 고통으로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야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에게는 반드시 어떤 형태의 조력을 제공하는 대상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텐데 안나에게는 슬프게도 그런 조력자가 없어 안나 스스로 마니의 환상을 만들어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 내는 모습이 대견하면서 동시에 안쓰럽기 그지없다. 교실 안에도 안나 같은 아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아이들의 존재를 알아차릴 때도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고 한 해를 보낼 때도 많았으리라 생각하니 흐릿한 얼굴들이 눈 앞을 스친다.